60년간 깊어진 맛·추억 남기고
자연 속에 살며 건강 돌보기로
"진심으로 운영할 사람 있다면 기술 전수하고 집기 제공할 것"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에 터를 둔 석쇠불고기 전문점 '판문점'이 문을 닫았다.

판문점은 1960년대 중반 손모례(1928~2012) 사장이 의창구 북동시장에서 음식을 팔던 게 시작이었다. 1960~70년대 공사가 많던 때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공사 현장 노동자들이 여러 지역에서 온 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 손님들 사이에서 '판문점'이라 불렸다. 손님들이 간판 '판문젼'을 만들어 달았다.

손모례 사장에게 가게를 이어받은 건 둘째딸 손효양(55), 둘째 사위 한유성(59) 씨다. 손모례 사장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 80세까지 판문점을 함께 운영했다. 

한유성(왼쪽)·손효양 부부가 2011년께 팔룡동 '판문점'에 있는 모습. /경남도민일보DB
한유성(왼쪽)·손효양 부부가 2011년께 팔룡동 '판문점'에 있는 모습. /경남도민일보DB

부부는 이달 17일부터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 튼튼하고 값진 원목 식탁을 처분했다. 대형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지하 1층부터 가게 영업하던 지상 1층, 가정집인 지상 2층까지 정리해야 한다. 온종일 치우고 버리는 데도 끝이 없다. 팔룡동으로 온 지 10년이 넘었다. 쌓인 시간만큼 물건들도 추억들도 있다.

◇세월만큼 쌓인 추억 = 이 부부가 장사한 지 23년, 생각나는 손님들도 쌓여 있다. 창원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가족이 모여 한 방에서 왁자하게 즐기고 가던 손님들이 기억에 남는다. 문을 닫는다고 하자 석쇠불고기, 된장고추 반찬을 못 먹어 아쉬워 어쩌느냐고 한 손님도 있다.

정말 배가 고파서 들어온 손님들도 간혹 있었다. 돈을 못 내는 상황이 보였지만 반찬과 국밥을 내줬다. 도시락을 손에 쥐여 줬었다. 깨끗하게 씻은 도시락을 돌려주러 올 때 또 음식을 싸서 배웅했다. 

도저히 힘들어서 하고 싶지 않아졌을 때 붙잡아준 단골손님들 얼굴도 생각난다. 그럼에도 문을 닫기로 했다.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에 터를 둔 석쇠불고기 전문점 '판문점'이 이달 문을 닫았다. /주성희 기자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에 터를 둔 석쇠불고기 전문점 '판문점'이 이달 문을 닫았다. /주성희 기자

판문점 문을 닫는 이유는 2가지다. 

첫째는 지킬 약속이 있어서다. 한유성 대표는 부인 손효양 사장에게 직장인보다 빠르게 정년을 맞이하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60세가 되기 전 가게를 정리하고 자연 속에 가 살자고 했다. 1년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부부는 작은 과수원도 운영하고 때로는 바다에서 낚시를 하며 살려고 한다.

두 번째는 손 사장 건강상 이유다. 손 사장은 일찍부터 허리디스크로 고생해왔다. 하루도 편하게 쉰 적이 없어서다. 손 사장이 찾는 병원 의사는 5년 전부터 경고했다. "이대로 가다가 정말 큰일이 난다." 수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거라는 위기감이 있었다. 영업시간 중 오후 3~5시 휴식시간을 정해두었지만 소용없었다. 한 대표는 "내 가족 건강보다 우선은 없다"며 가게를 정리하자는 결론을 냈다. 부부는 "경영 부진으로 접는 게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행복 속에 남은 아쉬움 = 미뤄뒀던 병원 진료를 받고, 여행을 갈 수 있게 돼 좋기만 하다는 부부. 그럼에도 지나간 시절에 아쉬움이 있다. 

손 사장에게 어머니 손모례 사장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중학생 때 신장 질환으로 고생한 손 사장. 어머니 손모례 사장이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꼬박꼬박 데리고 다녔다. 어머니는 온갖 약초와 보양식을 해왔다. 안 먹어본 게 없다. 손 사장은 "그때 어머니가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딸이 고생하지 않길 바랐는데 가게를 물려받는다고 하자 굉장히 속상해하셨다. 그게 손 사장 마음에 걸린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니 더 사무친다. 판문점을 운영하는 동안 어버이날에 어머니 모시고 여행 한 번 안 간 것이. 다른 부모님들 고기 먹인다고 우리 부모님 못 챙긴 게 한이다. 

투정 한 번 않던 자녀들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어린이날에 먹고 싶어하는 음식만 시켜놓고 집을 나서야 했던 그 미안함이 요즘에 더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래도 허튼 길로 가지 않고 잘 자라주어 고마운 마음뿐이다. 

판문점의 미래를 이끌 사람이 없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고기 양념 제조법과 고기 다지는 방법, 계절별 반찬을 만드는 방법 등 판문점을 이끌어 온 세월만큼이나 넘치는 기술들이 있다. 이 기술을 전수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두 자녀는 요식업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첫째 자녀는 조만간 국외 대학에 연구원으로 입사할 계획이다. 둘째 자녀는 이제 대학에 입학해 가게를 맡길 수 없다.

손 사장은 "판문점 이름을 걸고 장사할 사람이 있길 바랐는데 없더라"면서 "기술도 집기들도 전부 무상으로 줄 마음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창원에서 먹을거리인 석쇠불고기를 진심을 담아 제공하려는 이를 만날 수 없었다.

혹시 뒤늦게라도 기술 전수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함께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 대표는 "진심만 가지고 있다면 장사가 안정화되는 시기까지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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