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로 교류 기회 단절
학업 병행 수능 재도전 준비
휴학 후 여행 가거나 대외 활동
어느새 고학번 돼 졸업 앞둬
온라인 수업만 듣다가 졸업도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 대부분은 약 12년간 대학에 가기 위한 여러 과정을 밟는다. "대학 가면 네가 원하는 것들 다 할 수 있어.", 혹은 "입학하고 놀아, 그러니까 지금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해"라는 말을 들으며 즐거운 대학 생활을 누릴 날만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2019년 11월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하여 보고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학생들의 대학 생활에도 크게 변화를 주었는데, 특히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20, 21학번이 그랬다.

'코로나 학번'이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할 당시에 대학에 입학한 학생으로, 비대면 강의나 행사 전면 중단을 통해 제대로 대학 생활을 즐겨보지 못한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코로나 학번은 신입생 OT, MT, 축제 등 동기와 우정을 나눌 기회도, 선후배와 안면을 틀 기회도 없었다. 특히 20학번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이후 입학한 21학번은 거리 두기나 여러 규제 완화로 간소화된 대학 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덕에 동기나 선후배와 교류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20학번은 단절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는데, 실제로 20학번이 대부분인 교실과 21학번 위주인 교실을 비교해 봤을 때 학습 분위기가 현저히 다르다. 약 4년을 함께 보낸 동기이지만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팀원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작업을 할 때 팀을 짜는 것부터가 고비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등 비대면 강의가 이뤄지던 2020년 3월 서울 서대문구 한 가정집에서 20학번 학생이 랩톱 컴퓨터로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등 비대면 강의가 이뤄지던 2020년 3월 서울 서대문구 한 가정집에서 20학번 학생이 랩톱 컴퓨터로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꿈꾸던 대학 생활과 점점 멀어지는 현실에 20학번 학생들은 재수나 반수, 혹은 편입을 고민하기도 한다. 앞선 입시에서 아쉬움과 뜻처럼 풀리지 않는 대학 생활에 현재 속해있는 대학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보려는 것이다. 물론 그대로 본인의 대학에 남아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학 생활을 누리는 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입학 시절 만들어졌던 20학번 동기 단체 카카오대화방은 누군가의 퇴장 알림이 계속해서 울리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20학번 학생 대부분은 현재 졸업을 했거나, 졸업을 앞둔 상황이다. 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본인의 선택으로 각자 다른 상황에 부닥쳐 있는 20학번 학생들을 인터뷰해 보았다.

◇대학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해 가다

"대학 입시에 아쉬움을 가졌던 20학번 학생들에게 코로나 팬데믹 시기는, 하늘이 나에게 재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만 같았어요." 익명의 ㄱ 씨는 20학번이었지만 현재는 21학번으로 타 대학에 다니고 있다. 당시 ㄱ 씨는 대학 입시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으나 합격 통보를 받은 대학에 다니기로 하였다. 그러나 모든 강의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행사조차 없는 탓에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ㄱ 씨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학 강의 수강과 수학능력시험 준비를 1년간 함께 했다. 다행히도 팬데믹으로 인한 대학 강의가 1년간 온라인으로 지속되자 ㄱ 씨는 큰 어려움 없이 준비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ㄱ 씨는 원하는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현재는 만족하는 대학에 다니며 즐거운 대학 생활을 누리고 있다. 실제로 ㄱ 씨를 비롯한 여러 학생에게 코로나 팬데믹은 다시 한번 도전해 볼 기회가 되어주었다.

◇잠시 삶에 작은 휴식기를 취하다

학교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원하는 기간 동안 본인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휴학'은 대학 생활하는 동안 한 번쯤은 해봐야 할 경험으로 말하기도 한다. "누리지 못하는 대학 생활이 아쉽지만, 다른 대외활동으로 여러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아요." ㄴ 씨는 팬데믹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자, 휴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ㄴ 씨는 비교적 야외 활동이 가능했던 2021년에 휴학을 신청하였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이용하여 여행을 가거나 여러 대외활동을 통해 바쁘게 지내왔다.

"대학 생활에 아쉬움이 많은 20학번 동기들과는 다르게, 나는 대학 생활에서 기대되는 활발한 활동들에 아쉬움이 없다." 이렇듯 ㄴ 씨는 휴학을 통해 얻은 경험이 아주 값지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ㄴ 씨는 1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은 덕분에 현재는 대학 내에서 진행 중인 여러 프로그램에도 활발히 참여하며 즐거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쉬운 대학 생활이지만 이어가다

"4학년쯤 되니까 이젠 아무 생각도 잘 안 들고 빨리 졸업이나 하고 싶어요." ㄷ 씨는 사립대 인문계 대학생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4학년이다. 사실 ㄷ 씨는 내향적인 편이며 활발한 성격은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팬데믹이 찾아온 첫 1년은 집에 오래 있을 수 있단 생각에 마냥 기뻤다. 그렇지만 큰 비용의 등록금을 꾸준하게 내는 것에 비하여 본인이 얻어가는 게 없다고 느껴지며 '현실 자각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신입생 때는 신입생이라는 이유로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에 필수로 참여해야 한다. 나와 비슷한 내향적인 사람들은 이런 행사를 통해서 새로운 타인들과 소통하고 친구를 만나게 된다." ㄷ 씨는 항상 새로운 행사에 억지로 나갔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하였다. 고학년이 된 작년부터는 더 이상 본인을 이끌어 줄 사람이 없는 것도 물론이고, 학번 높은 이를 지칭하는 '고인 물'이 된 거 같아 참여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ㄷ 씨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어느새 졸업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ㄷ 씨의 경우와 다르게 학생회나 여러 동아리 등으로 학교생활을 즐기는 학생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비교적 높은 학번을 가졌단 생각 탓에,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을 참고하였을 때도 이러한 모습은 높은 학번들에 다가오는 고민이다. "XX 학번인데 MT 가봐도 되겠지? 나 한 번도 안 가봤는데.", "XX 학번인데 종강 총회 가는 거 불편하게 여겨지나요?" 등의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댓글은 학번을 따지지 않고 많은 경험을 해보는 걸 추천하는 반응이다.

"상식적으로 MT에 XX 학번 오는 건 민폐 아닌가?", "신입생들 노는 곳에 고인 물은 빠져주는 게 예의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게시글을 작성할 수 있는 에타의 특성상, 이를 부정하는 이도 찾아볼 수 있다. '고인 물'이기에 눈치껏 빠지는 게 맞는다는 의견에도 공감하지만, 본인이 누려보지 못한 대학 생활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까닭에 20학번의 고민의 골이 깊어지는 이유다.

◇잠깐의 대학, 졸업

전문대를 다닌 익명의 ㄹ 씨는 졸업 직후 취업에 성공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후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전문대라 짧은 대학 생활이 예정된 건 알고 있었으나 동기들과 우정을 쌓는 것도, 그리고 여러 추억을 쌓는 등의 경험 모두 하지 못한 채 졸업하는 게 아쉽다." ㄹ 씨는 대학에서의 생활이 고등학교를 6년 다닌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요즘 ㄹ 씨는 전공했던 분야와 다른 길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전공 과정이 실습으로 이뤄진 경우가 상당한데, 대부분을 간소화된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전공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만약 모든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다른 길을 더 빠르게 선택할 수 있었을 것 같다." ㄹ 씨는 본인이 내린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빠른 결심을 내리지 못한 아쉬움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학번 모두 각자의 아쉬움은 존재하나,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단 사실을 인정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며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그들은 아쉬움을 채우기 위하여 새로운 선택을 하기도 하며, 혹은 아쉬움을 삼켜내고 다른 기회를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MT도, 축제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최악의 학번이라며 놀라움과 놀림의 대상이 될 때도 존재하지만 잠깐의 정체기를 본인의 방식대로 풀어나간 이들에게 값진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정유정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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