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에 걸린 민박 손님
갑자기 사라져 한바탕 소동
금방 찾았지만 가족들은 한숨

인생 칠팔십부터라고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는 게 당연해
모두를 위한 인생 마무리 그려

◇난 괜찮아

오기로 한 민박 손님을 기다리는 내내 아내는 걱정이었다. 오늘 손님은 나이 많은 부모를 동반한다고 했다. 오래된 옛 시골집이라 화장실이 한쪽으로 떨어져 있으니 나이 든 손님이 온다고 할 때마다 아내는 신경을 곧추세웠다.

나무 문이 달린 아랫채 부엌. /김석봉 시민기자
나무 문이 달린 아랫채 부엌. /김석봉 시민기자

주거환경이 열악한 집을 민박집으로 쓰자니 신경써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요즘은 한 주거공간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심지어는 방 안에 화장실을 둔 집도 많다. 그런 집에서 살다 우리 민박집을 이용하는 손님의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자녀 따라 온 나이 든 손님의 못마땅해 하는 모습을 봐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방이라도 뜨끈뜨끈해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에 아궁이에 장작을 더 많이 넣었다.

봄 햇살은 천지사방을 흔들며 푸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마당가 평상에 앉아 아내와 봄나물을 가리는데 바깥마당에 자동차가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아내가 손을 털며 마중을 나갔다.

과연 걸음걸이도 어둔해 뵈는 구십 가까이 되었을 법한 노인 부부가 아들 내외의 안내를 받으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먼지 쌓인 요강을 꺼내고

"아이고, 우리 집이 이리 누추한데 걸음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옛날 이런 집에서 사셔서 일부러 이 집을 찾아왔지요."

노인께 여쭈었는데 아들이 대신 대답했다.

"옛날 아버지 어머니 살던 시골집 같은 민박집이 있다, 새롭게 옛날 생각도 해보면 좋겠다면서 모시고 왔지요. 아버지 어머니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얘기를 나누는 사이 두 노인이 민박집으로 쓰는 아래채 부엌문을 기웃거렸다. 내가 달려가 부엌문을 열어보였다. 장작 타는 매캐한 냄새가 확 풍겼다. 아궁이에선 아직도 잔불이 남아 가느다란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요새도 이런 집이 있네. 옛날 우리가 살던 집도 이런 나무 문짝 달린 부엌이 있었거든."

여자 노인이 부엌 나무 문짝을 조심조심 열었다 닫았다 하며 살펴보고 있었다. 오래된 추억을 소환하려는지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남자 노인은 부엌 안쪽을 잠시 훑어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오시느라 고단하실 텐데 좀 누워서 쉬시지요.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요."

아내가 서둘러 방을 안내했다. 아들이 남자 노인을 부축했다. 여자 노인이 뒤따라 들어가고 홀로 남은 며느리가 내게로 다가왔다.

"아버님께서 알츠하이머세요. 애기치매라고 해요."

며느리는 미리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목소리를 죽였다.

"괜찮아요. 식구들이 불편하시겠지. 화장실이 저긴데 어쩌시려나? 요강을 하나 내드릴까요? 혹시라도 모르니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주세요."

나는 마루 아래 먼지를 뒤집어 쓴 요강을 꺼내 씻었다.

◇긴 병에 효자 없지

손님들은 마을 밖으로 산책 나가고 나물 가리던 평상에 아내와 마주 앉았다.

"저기 노인네가 애기치매래."

아내가 흠칫 놀랐다.

"치매도 종류가 있다더라고. 자꾸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 치매를 애기치매라고 한대."

"그래도 고맙지. 요즘 치매 걸린 부모 모시고 다니는 자식들이 얼마나 되겠어?"

나물을 가리는데 자꾸 그 남자노인이 생각났다. 늙은 몸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아직 건강해보였다. 불그레한 얼굴색에 허리도 굽지 않았고 다리도 멀쩡해보였다. 그런 몸에 애기치매라니 자식들이 얼마나 황망했을까. 저런 몸인데도 그런 몹쓸 일이 찾아들까. 건강을 자신하며 살아온 나는 노인의 애기치매가 좀체 믿기지 않았다.

일전에 치매보험을 들까 말까 망설이던 때가 있었다. 아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런 보험 하나는 들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 않던가. 자식 믿고 노후를 맞이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결국 아들딸 모두 떠나버리고 요양원으로 들어가 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치매였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본인에게는 치매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스스로는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독한 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병원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치매가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고 힘든 거야 이왕지사 아닌가. 귀찮아하는 눈치도 서운한 마음도 느끼지 못하니 독한 병보다 치매가 오히려 괜찮겠다 싶었다.

나물을 가려 담고 청소를 끝낼 즈음 아들내외가 앞뒤에서 두 노인을 보살피며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걸음발이 많이 지쳐있었다. 애기치매라더니 몸도 아기처럼 변했나싶어 안타까움이 더했다.

한 노인이 산촌 길을 걷고 있다. /김석봉 시민기자
한 노인이 산촌 길을 걷고 있다. /김석봉 시민기자

◇며느리의 한숨

저녁밥상을 물리자 아들은 두 노인과 아래채로 내려가고 며느리만 남았다. 아내가 참외를 깎아 접시에 담았다.

"이거 어르신들 드리세요. 요즘 참외가 참 달더라고."

"고마워요. 이런 노인네도 다 잘 받아주시고."

"고맙기야 우리가 더 고맙지. 요즘 젊은이들 저런 부모님 모시고 다니기가 쉽나요?"

"아버지 치매 오기 전까지 너무너무 건강해 어머니 병수발 다 했어요. 어머니는 신장이 나빠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거든요. 그때마다 아버지가 병원에 모시고 다녔는데 이제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형편이 되어버렸네요."

아들 내외와는 다른 도시에서 따로 산다고 했다. 맞벌이로 살아 주말이나 되어야 찾아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너 달 이렇게 살다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힘들거나 하면 요양원으로 보내세요. 그게 아버님께도 좋아."

"그러고 싶지만 어머니가 계신데 그리할 수 있겠어요?"

연신 한숨을 내쉬던 며느리는 참외접시를 들고 아래채로 내려갔다. 이런저런 집기를 치우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잔주름이며 귀밑머리까지 나이든 티가 역력했다. 인생은 칠팔십부터라고 하지만 환갑 진갑 다 넘겼으니 나이가 들긴 들었다.

"당신 여행 가고 없을 때 당신 없으면 어찌 살까 싶더라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래채 노인부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뒷마당에 갔다가도 내가 왜 뒷마당에 왔는지 생각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때가 있었다. 창고를 열었는데 왜 문을 열었는지 퍼뜩 생각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두고 한참동안 뒷머리를 긁적이는 아내를 종종 봐왔다. 충전기에 꽂아둔 전화기를 찾는다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부지기수다. 그렇게 차차 기억이 흐려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한집에 사는 아들 며느리라고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부모 자식 사이도 가까이 사는 이웃쯤으로 여겨야지 그 이상 생각해선 안 된다는 아내였다.

"홀로 남게 되면 읍내 임대아파트라도 얻어 나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들 불완전한 미래가 어른거렸다. 아내와 공허한 눈빛만 주고받는 밤이었다.

◇치매노인의 마지막 외출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갑자기 마당이 소란스러웠다. 밖으로 나가자 아들 내외와 여자 노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우리 아버님이 안 계세요. 어딜 가신 거야? 이를 어째?"

며느리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들은 사라진 남자 노인에게 전화를 걸며 사립문 밖으로 뛰어나가고 여자노인은 허둥대며 뒷마당으로 화장실로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나는 황급히 복잡하게 얽힌 마을 골목길로 찾아 나섰다. 집 앞 돌담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바로 눈앞에 남자 노인이 우두커니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계세요. 찾았어요."

반가움과 안도함에 우리 집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난 괜찮아."

그 순간 남자 노인이 무겁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는 듯 얼굴은 평온했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걸이도 똑발랐다. 지상의 어느 아름다운 길을 걷다 왔을까. 고향마을 추억의 길을 돌아왔을까. 어쩌면 저 남자 노인은 마지막 자유외출을 즐겼을지 모를 일이었다.

집에서 가족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남자 노인 허리춤에 매달린 전화기에선 연신 전화벨이 울렸고, 여자노인의 눈언저리가 붉어졌고, 아들며느리의 표정은 안타까움에 젖어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이쯤에서 서로 이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찡그리기 전에, 역정을 내기 전에, 귀찮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더 쌓이기 전에 남자 노인이 요양원으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찾아올 어느 날 나와 아내도 그쯤에서 세상과 작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석봉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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