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전월세계약 보증금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임대인의 사기 의도가 짙었든, 갭 투자 실패로 말미암은 사고이든, 애써 모은 목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은 애가 탄다. 일부 공인중개사·부동산컨설팅업체·중개보조원들의 범죄 모의, 혹은 중개 사고로 공인중개사 직업군 자체를 불신하는 풍조마저 생겨나고 있다. 반복되는 문제의 원인을 개인·특정 직업군에 찾아서 해결될까. 사기·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만큼 제도가 허술한 탓은 아닐까. <경남도민일보>는 17일 하재갑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남지부장을 만나 최근의 보증금피해 사고 원인, 근본적인 보증금 피해 예방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17일 하재갑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남지부장이 보증금피해 사고 유의점, 근본적인 보증금 피해 예방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17일 하재갑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남지부장이 보증금피해 사고 유의점, 근본적인 보증금 피해 예방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경남에서도 전세사기 의심 사고들이 연일 벌어져 일부 공인중개사들에게도 여론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최근 전세사기 흐름과 관련해 개업공인중개사의 한 사람으로 착잡한 마음뿐이다. 공인중개사들의 자성이 필요하고, 특히 직업윤리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현재도 중개사무소 개설 전 28~32시간의 실무교육을 받고, 개설 후에도 12~16시간의 연수 교육을 2년마다 받는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남지부도 신탁부동산, 다가구주택 거래사고 예방을 위해 경남도 이하 시군구와 함께 매년 예방교육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과당 경쟁으로 말미암은 계약 체결에 급급해 사고가 벌어지는 일이 있다. 실제 임대인 여부, 공시·미공시 권리관계,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국세·지방세 체납금액, 신탁부동산 여부 등 확인을 소홀히 하면 언제든 전세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명심하고 철저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 의무를 다해야 한다. 개업 직후 종합적인 경험이 부족한 경우에는 중개사도 모르고 당하기도 한다.

다만, 실제 전세 사기에 의도적으로 가담한 주체를 살펴보면 대부분 부동산컨설팅업체나 중개보조원 비중이 높다. 이들은 중개 자격도 없고, 공인중개사법상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들이 벌이는 중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 활동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인중개사 직업윤리와 전문성을 강화할 제도개선책이 있을까.

"공인중개사 자격을 얻은 뒤 곧바로 개업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자격 취득 이후 다른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소속 공인중개사'로 일정 기간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개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만큼 현장에서 일어나는 중개 형태, 사고 사례가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미국 제도를 살펴보면, '부동산판매원'과 '부동산중개사'를 구분한다. 부동산중개사가 되려면 2~3년간 부동산판매원 실무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제도가 우리 현실에 꼭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보다는 까다로워져야 중개사 실수로 말미암은 임차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현행법으로 개업공인중개사 1명당 5명까지 둘 수 있도록 한 중개보조원 정수도 축소해야 한다. 중개보조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법적으로 현장 안내, 서류 정리 정도라 사실상 1명이면 충분하다. 현실에서는 중개보조원이 권리관계 설명 등 중개사 업무를 해버리는 일이 많은데,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는다. 자격을 갖춘 소속공인중개사가 중개보조원을 대체하면 전체적인 중개 전문성도 높아진다."

-임차인들은 공인중개사들을 믿고 임대차계약에 임한다. 그럼에도 반드시 주의해야 할 최소한의 사항이 있다면?

"제도의 미비점 때문에 공인중개사가 확인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는 점을 임차인들도 알아둬야 한다. 중개사 입장에서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찾을 수 있는지 살피려면 '공시되지 않은 권리' 즉 선순위 임대차 현황, 세금 체납 현황 등을 알아야 하는데, 여의치 않아서다. 이 같은 정보는 임대인이 중개사에게 알려줘야 확인할 수 있는데 가르쳐주지 않거나 거짓으로 알려줘도 중개사가 막기 어렵다. 그러면 중개사실확인서에 '임대인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미제출했음'이라는 단서를 달고, 임차인에게 그대로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중개인은 여기까지만 해도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임차인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임차인이 계약을 강행하는 일이 잦다. 급히 집을 구해야 하거나 전셋집이 희귀한 상황일 때 그렇다. 이때 임차인도 임대인 동의를 얻으면 직접 전입세대와 세금 체납정보 열람이 가능하다. 따라서 반드시 임대인에게 이를 요구해야 한다. 물론 임대인이 또다시 거부할 수 있겠지만 그 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또 하나, 공인중개사가 시군구청에 등록된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은 중개사가 아닌 임차인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결국, 임대인이 정보 공개를 거부하면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마음 놓고 임대차계약을 맺으려면 어떤 제도 개선이 필요할까.

"종합적인 물건 정보에 중개사가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임대인이 집을 내놓고 싶어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를 부탁할 때, 반드시 개인정보수집동의서류를 받도록 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는 이 서류를 근거로 행정복지센터에서 전입세대열람원을 떼고, 관할세무서에서 국세·지방세 체납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열람 기한에는 제한을 둬야겠지만, 이런 간단한 제도 개선만으로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사실 공인중개사들 처지에서는 '집주인이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문구만 기재하면 처벌을 피해갈 수 있으니 오히려 지금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임차인 피해를 막으면서 전문직으로서의 자긍심도 고양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개혁이다. 이렇게 바뀌면, 있는 권한을 쓰지 않아 중개 사고를 일으킨 공인중개사는 강력하게 처벌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부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가입 의무가 없는 '임의단체'라서 정보접근권을 주기 어렵다는 견해다. 중개사들에게 이런 권한을 줄 경우 제대로 행사하는지 단속할 필요가 있는데,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중개사들도 많다는 논리다. 그래서 협회는 '법정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관련법도 국회에 발의된 상황이다.

'공인중개사가 공인중개사를 처벌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단속 권한을 위임받은 공적인 사무이기 때문에, 유착 관계가 적발되면 협회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만들어두면 된다. 대한변호사협회, 한국세무사회 등 전문직 법정단체들사례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현재 공인중개사 지도·단속 권한은 각 시군구 지자체가 가지고 있지만, 행정력 부족으로 효과적인 단속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11만 5000여 회원이 있고, 각 지부·지회별로 지역 사회에 뿌리깊게 조직되어 있다. 단속 권한만 있으면 불법·불성실중개 자정작용, 전세 사기·사고 예방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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