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그리는 한국화가...창원서 24회 개인전
장지에 흙 가루 바르고 뿌리기 작업 반복
지역 미술단체서 역할...작품 활동 꾸준히

정면을 향한 빨간 자동차. 지붕에는 초록 나무 세 그루가 심겨 있다. 뿌리를 내린 곳은 자동차 위에 그려진 파란 풍경 속이다. 풍경 속에 작은 집 한 채가 꿈꾸듯 자리 잡았다. 전체적으로 진한 노란색 배경이라 그림에서 밝고 활기찬 기운이 샘솟는다. 창원 파티마갤러리에서 만난 우순근(51) 작가의 ‘행복한 자동차’란 작품 앞에서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진다. 그는 내달 2일까지 24회 개인전 ‘시간여행 이야기’를 열고 있다. 우 작가를 지난 19일 갤러리에서 만났다.

◇동심을 그리는 화가 = 한국화를 전공한 우 작가의 그림은 젊다. 노란 원형에 스마일 웃음을 짓는 캐릭터가 빠지지 않는 작품은 아트페어에서 인기가 높다. 아트페어에서는 대체로 어두운 그림보다 밝은 느낌을 선호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제 작품 앞에 서면 이야기를 쏟아 냅니다. 처음 자동차를 사서 가족여행을 간 추억부터 그림 속 차를 타고 달나라로 날아갈 수 있겠다는 상상까지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갑니다. 누구나 가진 동심으로 초대하겠다는 의도가 어느 정도 유효했다고 봅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그림을 해석하는 이들을 만나면 또 다른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자동차와 스마일 캐릭터를 그려 넣는 건 최근 3년 시간여행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시작했다. 한때 황금 들녘, 설경 등 풍경 작업에 매료된 시기도 있었다. 작품 속 지평선을 바라보다 저 길에 무엇이 놓였을까 생각하던 끝에 자동차가 생각났다. 그리고 작품에는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빨간 지붕의 작은 집 한 채다.

“우리는 항상 어딘가 떠나는 해방감을 꿈꾸고 살아갑니다. 실제 여행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매일 바쁘게 살면서도 여름휴가를 위해 일 년을 산다는 사람도 있으니, 떠남은 각자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짧고 긴 여행의 마무리는 결국 집으로 향합니다. 그림에 있는 작고도 작은 집은 안식처이자 돌아갈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순근 화가. 24회 개인전 '시간여행 이야기'를 열고 있는 창원 파티마갤러리에서 만났다. /박정연 기자
우순근 화가. 24회 개인전 '시간여행 이야기'를 열고 있는 창원 파티마갤러리에서 만났다. /박정연 기자

◇오전에 작업, 오후에 협회 업무 = 인터뷰하는 2시간 남짓 우 작가 휴대 전화가 자주 울렸다. 현재 경남전업미술가협회 부회장과 경남미술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에 의견을 조율하고 여러 전시와 행사를 준비하고 처리하는 일도 틈틈이 해야 한다. 그동안 창원미술청년작가회 사무국장(2002~2005)과 부회장(2006~2007), 창원미술협회 이사(2007~2009), 한국화 분과장(2016~2018) 등을 맡아왔기에 지역 미술계에서 활동량이 많은 마당발이다.

“하루를 정말 금쪽같이 귀하게 삽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도 없어요. 매일 오전 6시에 눈뜨면 동읍에 있는 동네를 한 바퀴 걸으며 풀벌레 소리를 듣고, 이내 사림동에 있는 작업실로 향합니다. 3~4시간 집중해서 작업하고 나면 점심때부터 사무적인 일들로 전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젊을 때는 주로 야간에 작업을 했는데 미술 단체 일을 맡은 이후로는 오전에 작업하는 게 하루를 나기에 최적화된 패턴이라 이렇게 습관을 들인 지 10년 정도 됐습니다.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이나 휴일에 나머지 작업을 이어갑니다.”

장지 위에 기본 바탕으로 토분 즉 흙을 쓰는 작업 특성상 뿌리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기에 게을리할 수가 없다. 장지는 한국화가들이 쓰는 화선지를 말한다.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지는 두껍고 질이 좋다.

“캔버스 위에 작업하는 서양화와 달리 장지를 직접 자르고 나무를 대서 틀을 잡습니다. 토분을 3번 바르고, 그 위에 뿌리기 작업을 10번 이상 합니다. 탁하지 않고 맑게 보이는 이런 색을 종이가 뱉어낸 색이라 칭합니다.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는 유화와 달리 한국화는 장지가 머금고 있다가 마르고 나면 색을 뿜어 내기에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도록으로 보는 것과 달리 제 작품을 눈으로 보면 반짝이거나 입체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흙가루에 색을 입혔기에 그렇습니다. 흙도 거르고 정제해서 저만의 방식으로 바릅니다.”

‘꿈을 담다 - 행복한 자동차’ 연작들은 바탕이 황색이다. 오행 사상과 오방색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오행의 중앙이자 우주의 중심이라 여겨지는 토(土) 즉, 흙의 빛깔 황색으로 표현해 만인의 소소한 감정들이 황색의 의미처럼 귀하게 여겨져 행복하고 따뜻해지기를 기원하는 작가의 염원이 담겼다.

우순근 작 '꿈을 담다 - 행복한 자동차' 시리즈. /우순근

◇운동 포기하고 시작한 그림 = 우순근은 초·중학교 시절에는 수영도 하고 복싱도 열심히 해서 운동선수가 될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권유로 미술학원에 갔다가 재능을 발견하고는 그 길로 입시에 몰두해 창원대 예술대학 미술학과에 들어갔다.

“제가 좀 체격이 있지요. 어릴 적에 운동을 했습니다. 진주시 상평동에서 태어나서 유소년기는 진주에서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제가 미대에 간다고 했을 때 다들 놀랐습니다. 요즘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운동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부모님 걱정도 많이 끼쳤습니다. 휩쓸려 다니지 말고 좀 차분하게 지내라는 이유로 방학 때 부친 권유로 미술학원에 등록했어요. 부친이 아무래도 제가 노트에 틈틈이 그렸던 그림을 보셨나 봅니다. 못 이기는 척하고 갔는데, 막상 갔더니 엉덩이를 붙이고 일어날 생각을 안 했던 거죠. 일찍 입시 준비했던 선배들 실력을 따라잡고 미술학원에 남들보다 일찍 가서 늦게까지 있다가 오니까 부모님도 신기해하셨지요.”

미대에 입학하고는 배움에 더욱 푹 빠졌다. 창원대에서 한국화 전공 석사도 마쳤다. 공모전에도 부지런히 도전했다. 2009년 경남미술대전 대상을 받은 이래로 2013년 경남청년작가상, 2018년 동서미술상, 2019년 성산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등을 차지했다. 1996년 첫 전시 이후 27년 동안 개인전 23회, 국제아트페어와 국외전 30여 회 참가, 초대전과 그룹전 등에 400여 회 참여했다.

“돌아보면 작품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은사님 이야기를 항상 떠올리며 지냅니다. 졸업하면서 해마다 개인전을 열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스스로 한 약속을 부단히 지키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못할 때 해를 넘기기도 했지만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압니다.”

결국, 작업이 행복하니, 작품에 가득 그 행복이 담길 것이고 그걸 보는 관객에게도 그 행복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가 아트페어에서 왜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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