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임차인 예비신부 둔 시민
같은 피해라례 찾아 해결 나서
자료 모아 지역사회 서건 알려
저리 대환대출·업자 조사 제안

전세 임대차계약 목적이 내 집 마련이든, 결혼 준비이든, 사업자금이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인생 궤적은 크게 흔들린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손해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충격을 몰고 온다. <경남도민일보>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이들이 국가에 바라는 점은 뭔지 묻고, 3회에 걸쳐 지면에 싣는다.

"처음 이사할 때 집주인에게 '이런 집 한 채 갖고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부럽습니다' 말을 걸었죠. '제가 이 한 채밖에 없을 것 같아요?'라고 대꾸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허세가 있던 사람이었는데….아직도 그 말을 곱씹으면서 '조금 더 빨리 눈치 챘더라면' 하고 후회합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때에 죄인 된 심정 = 백태현(가명) 씨는 김해시 한 다가구주택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임차인과 미래를 약속한 사이다. 집주인이 잠적했다는 사실은 여자친구보다 먼저 알았다. 결혼을 준비하며 다음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주러 왔을 때, 문 앞에 붙은 메모를 봤기 때문이다. 주인이 같은 다른 부동산 임차인이 쓴 글이었다. 이 건물은 경매에 넘어갔는데, 금융기관 근저당·국세 체납을 비롯한 선순위 채권이 많아 법원 감정가를 빼면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슴을 졸이며 사실을 털어놓자 예비 신부는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종일 울며 자책하고, 직장에 나가는 일조차 버거워했다. 전세 보증금은 거의 대출금이다. 만약 떼인다면 평생 모아놓은 종잣돈을 털어 갚아야 한다. 원래 결혼자금으로 쓰려고 계획해놨던 돈이다. 백 씨가 구해놓은 신혼집이 있지만, 결혼식 뒤에도 살림을 합칠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부동산에 계속 살고 있어야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임차권등기를 받아두고 싶어도 임대차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아 불가능하다.

오히려 경제적 타격은 부차적이었다. 자신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이런 사달을 벌였다고 자책하는 예비 신부를 지켜보는 일이 가장 힘들다. 백 씨는 "결혼은 정말 중요한 인생의 이정표인데, 우리의 삶은 전세 사기 때문에 시작부터 틀어지게 됐다"라며 "원래 한창 피부관리도 받고 행복한 기분으로 결혼을 준비해야 할 여자친구는 아무 죄 없이 죄인처럼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절망 빠진 피해자들 연대해야 = 백태현 씨는 잠적한 집주인이 소유한 건물 4채 임차인들을 수소문해, 주도적으로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이기적이었다. 어떻게든 다른 세입자들보다 먼저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어두워져 가는 여자친구 모습을 보니 다른 사기 피해자들의 감정을 헤아리게 됐다.

먼저 임차인들이 가진 계약서를 검토한 뒤, 피해 보증금 규모를 파악하고, 계약 시 사기 정황도 일일이 확인했다. 이런 노력을 토대로 정리한 자료는 경찰, 지자체, 지역구 국회의원, 시의원들에게 사건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경남도민일보>가 이 문제를 먼저 보도한 일도 백 씨가 제공한 객관적인 서류들에 힘입었다.

생업이 있기 때문에 자료 정리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내 일인 동시에 피해자 모두의 삶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니 어렵지 않았다. 백 씨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마침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라며 "지자체·언론·경찰·정치인 등 다들 손을 내밀어 주어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절망에 빠졌던 피해자들도 조금씩 희망의 끈을 잡게 됐다.

백 씨는 "한분 한분 연락드리다 보니 밥을 제대로 못 드시거나 직장 생활하는 의미를 못 찾는 사람, 아무것도 안 했는데 빚만 1억 원 가까이 생긴 사회초년생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쪽에서는 안타까운 소식도 많이 들린다"라며 "보증금 변제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싸워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자주 하려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 법정 싸움 동안이라도 저리 대환대출을 = 백 씨는 "모든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만족하게 할 법은 생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라면서도 "대부분의 피해자가 도움받을 수 있는 지원 방법은 '저리 대환 대출'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임대인에게 형사·민사소송을 걸어 피해 회복을 시도할 텐데, 그 과정에서 법정 싸움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이때 피해자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비싼 전세보증금 대출 이자를 계속 감당하거나, 계약 만료 후 대출금을 일시상환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피해자들이 법정 싸움을 하는 '일시적 기간'이라도 저리 대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다.

전세 제도의 부작용을 미리 예방하려면, 임대인 자격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백 씨는 "직접 임대업에 종사해본 경험에 비춰 볼 때, 임대사업허가 없이 세금도 안 내고 하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라며 "그런 부분부터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백 씨는 "완벽하게 피해를 구제하는 일은 어렵고 모든 피해를 국가가 떠안으라는 말도 아니지만, 적어도 피해자를 벼랑 끝까지 내몰지는 않았으면 한다"라며 "전세사기와 관련해서는 신속한 경찰조사와 함께 피해 우려가 있는 부동산 사전 조사도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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