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버리지 않고 사는 '지저분 정신'
불편하지만 기후 위기 지구 살리는 길

"산골 할머니들 자랑거리는 / 태어나서 여태까지 / 여럿이 함께, 땀 흘리며 농사일하는 거다. / 농사일이라면 죽기 살기로 하는 거다. / 구멍 난 실장갑 / 해진 곡식 포대 / 찢어진 비닐 쪼가리와 나일론 끈 / 닳고 닳은 호미와 괭이 / 빛바랜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 함부로 버리지 않고 사는 거다." (서정홍 동시, <자랑거리>)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함께 근무하던 동료 책상 서랍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다. 사물함도 따로 없던 시절이어서, 나는 책상 서랍과 발이 닿는 책상 아래에 사무용품이며 책이며 이런 것들을 쌓아 두고 지냈다. 하루는 동료의 책상 서랍 안을 보게 되었는데, 깔끔하고 시원했다. 충격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내 책상 서랍과 그 아래쪽은 거의 고물상이나 재활용품 판매점 수준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깨끗하고 깔끔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답은 버리는 것이었다. 아끼고 모아 두고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 버리면 일단 깨끗해진다는 것.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면 그만큼 내 주변은 깨끗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지저분 정신'이란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생명다양성재단 소식지 <하늘다람쥐>에서 만난 용어이다.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잘리고 버려지고 뽑혀버리는 나무와 낙엽, 습지식물! 인공적인 데 길든 우리에겐 "자연의 자유로운 부정형이 예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관점의 빈곤함을 말해 줄 뿐 자연이 못생겼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도심 내에 야생의 자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는 세계 각국의 여러 연구 논문도 소개하고 있다.

구멍 난 실장갑, 해진 곡식 포대, 찢어진 비닐 쪼가리와 나일론 끈, 빛바랜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함부로 버리지 않고 사는' 산골 할머니들이야말로 지저분 정신을 실천하는 분들이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20년 전 시골로 이사 올 때 선풍기가 한 대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 너무 더워서 선풍기를 하나 더 사러 시내에 나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집에 에어컨까지 두고 있다. 모르는 사이에 나도 이렇게 변했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곳이나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 병원이나 학교 같은 경우,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켜 달라고 요구한다. 이젠 더위와 추위를 참고 견디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전기 사용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워서 에어컨 사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세상은 점점 더 더워진다.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조짐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런데도 에너지 사용을 줄이지 않는다. 거리엔 밤낮없이 광고판 안내판 불빛이 번쩍이고, 상가 불빛은 더 밝고 자극적이다. 경관 조명이란 이름으로 제법 규모가 있는 다리에는 밤이면 온갖 불을 밝히고, 발길이 끊어진 공원까지 훤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더워지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겨울에도 반소매 셔츠를 입고, 여름에도 싸늘함 속에서 보내려 한다.

어제 택배 상자를 정리했다. 스티로폼 상자를 모으고, 포장 비닐을 분리하고 투명 테이프를 뜯었다. 책이며 조립식 책꽂이, 티셔츠, 냉동식품을 포장했던 것들이다. 앉아서 주문하고 앉아서 받아쓰는 이 편한 삶을 바꾸지 않고는 더 더워지는 현실을 막을 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회성 행사나 외침은 흔하지만 삶에 뿌리내린 실천은 참 멀다. '빛바랜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 함부로 버리지 않고 사는' 할머니들이 답인데 말이다.

/이응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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