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에 국내 최초 팜사이더리…사과 재배∼술 생산 한곳서
인근 농가 사과도 매입 '공생'…48년 된 과원에 사이더리 세워
농업관광 더해 6차산업 활성화 "지속 가능한 사과농업 꿈꾼다"

사과 주산지 거창에서 시큼하면서 달콤한 맛이 도는 사이다(cider·사과 발효술·제품명 사이더)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사이다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즐긴 술이다. 특히 포도 재배가 어려운 지역에서 와인 대신 빚어 마신 술로 프랑스에선 시드르(cidre), 스페인에선 시드라(sidra), 독일에선 아펠바인(apfelwein)이라고 부른다. 저알코올 음료로 탄산이 들어 있는 사과 발효술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과수원에서 만드는 사이다 = 사이다를 만드는 곳은 국내 최초 팜사이더리 '해플스팜사이더리'(이하 해플스)다. 사이더리는 사이다를 만드는 곳을 이른다. 거창읍 갈지마을에 자리 잡은 해플스는 세 가지 사이다를 이달 말에 선보일 예정이다. 발효된 사과의 깔끔한 맛이 배어나는 드라이(알코올 6%), 사과의 새콤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스탠더드(4.5%), 신선한 사과즙의 감미로움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스위트(3%)를 생산한다.

해플스는 사과 생산부터 착즙, 사이다 생산까지 한 공정으로 진행하는 우리나라 유일한 사이더리다. 해플스 외에 사이다를 생산하는 곳이 서너 곳 있지만 과즙을 공급받거나 수입 농축 과즙을 희석해서 만든다.

거창이 고향인 유영재 해플스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사이다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 해플스팜사이더리 유영재(왼쪽에서 셋째) 대표와 직원, 가족들.  /해플스팜사이더리
▲ 해플스팜사이더리 유영재(왼쪽에서 셋째) 대표와 직원, 가족들. /해플스팜사이더리

◇공생을 꿈꾸는 사이더리 = 해플스는 지난해 자체 생산한 사과 외에도 인근 사과농가에서 40t을 사들였다. 상품성이 떨어져 수익성이 없는 작거나 흠이 있는 사과를 매입했다. 사과 농가들은 상품성이 있는 사과는 비싼 값에 팔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사과도 양조용 사과로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게 된 셈이다.

해플스는 사이다 생산을 본격화하면 한 해 소비되는 양조용 사과 물량이 최소 200t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유 대표는 사이다 생산을 통해 공생과 공존의 지속가능한 사과농업를 그리고 있다. 강원도까지 대규모 과원이 조성되는 현실에서 앞으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새로운 도전과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사이다를 생산하며 사과농가의 소득 증대와 더불어 농업관광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다양한 관광 콘텐츠가 부족한 지역 현실에 비춰, 유럽 등 선진국에서 진행하는 농업관광을 거창에서 실현하겠다는 각오다.

◇경관농업 살리며 6차산업으로 = 거창은 90년 사과농업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사과농업의 역사를 보여줄 과원은 거의 사라졌다. 오래전에 조성한 과원은 생산성을 높이고자 품종 갱신을 했기 때문이다.

▲ 해플스팜사이더리가 이달 말 출시할 예정인 '해플스 사이더' 3종.  /해플스팜사이더리
▲ 해플스팜사이더리가 이달 말 출시할 예정인 '해플스 사이더' 3종. /해플스팜사이더리

해플스는 48년생 사과나무 숲에 사이더리를 만들었다. 고목이 꽃을 피운 과원은 그 자체로도 보존의 의미가 있다. 유 대표는 생산성이 떨어진 오래된 과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역발상으로 6차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과수원의 싱그러움을 활용해 쉼과 치유, 재충전의 치유농업까지 만들어갈 참이다.

경남6차산업지원센터는 새로운 길 개척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해플스를 6차산업의 모범사례로 선정하고 홍보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 사이더리를 찾은 방문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플스를 소개하면서 젊은이들에게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로 알려졌다. 지난달 10일 임시 개장한 해플스 방문객은 평일 50여 명, 주말에는 300여 명에 이른다.

◇민관 협업으로 새로운 사과농업 = 해플스 사이다가 탄생하기까지 경남도농업기술원 거창사과이용연구소(소장 정은호)가 한몫했다. 연구소는 해플스와 3년 동안 협업해 사이다 상업생산과 품질유지 연구, 관련 기술과 양조설비를 구축했다. 또한, 국내에서 재배하는 사과 품종을 대상으로 양조 시험을 진행해 품종별 특성을 반영한 제조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소는 양조 전용 사과 품종을 연구해 킹스톤블랙을 육종해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킹스톤블랙은 꽃·열매 솎기와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농약 방제도 기존 과원보다 절반 이하로 줄여 노동력을 아낄 수 있는 품종이다. 수확도 기계로 할 수 있어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농가에 대안이 될 수 있다.

유 대표는 사이다 생산은 단순히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농업에 도전, 공존과 공생의 지속 가능한 사과농업, 가공산업을 일궈나가겠다고 밝혔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