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김서진·한송희 씨
자신만의 일 찾아 남해로 와
바닷가 폐기물 주워 재봉질
가방·돗자리·주머니 등 변신
"자연 풍광 이면을 비추고파"

쓰임을 잃은 재료들에 숨을 불어넣는 이들이 있다. 남해지역 프로젝트 그룹 키토부(Kitovu)다. 키토부는 아프리카 부족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로 '배꼽'을 뜻한다. 김서진(29)·한송희(28) 공동대표는 "배꼽은 태초의 흔적이다"며 "우리는 흔적을 좇고 발굴해 다시 흔적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나만의 일'을 하고픈 청년 = 서울 한 의류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던 두 사람은 지난해 키토부를 만들었다. 고향, 나이는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대학에서 예술을 공부했지만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을 업으로 하고 싶은 열망이 컸던 둘은 의기투합했다. 바로 김 씨의 고향에서 말이다.

어린 눈에 남해가 답답했던 김 씨는 스무 살 대도시로 향했다. 처음엔 낯선 서울 풍경과 사람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낯선 일상은 평범한 일상이 됐고 인도를 갔다 온 뒤 김 씨는 고향에 정착했다. 어른이 된 그의 눈에 남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깃든 곳이었다.

김 씨를 따라 여러 번 남해에 왔던 한 씨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둘은 전공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 남해지역 프로젝트 그룹 키토부 공동대표인 한송희(왼쪽) 씨와 김서진 씨. /김민지 기자
▲ 남해지역 프로젝트 그룹 키토부 공동대표인 한송희(왼쪽) 씨와 김서진 씨. /김민지 기자
▲ 키토부 주머니. /김민지 기자
▲ 키토부 주머니. /김민지 기자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 그들은 팀명을 정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망태기였다.

김 씨는 "망태기를 실생활에서 가방처럼 들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다 망태기는 단단하니 물렁물렁한 재료가 필요했고 그때 주위에 버려진 폐그물, 폐천막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둘은 바닷가나 거리에 버려진 어망과 통발, 폐천막을 줍기 시작했다. 동네 어르신에게 "이거 들고가도 돼요"라고 물으면 "그걸로 뭐할라꼬?", "냄새 나는 쓰레기를 왜 가져가노?"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과 안면을 튼 어르신은 이제 "열심히 해라, 고생한다"며 먼저 폐그물을 건넨다.

김 씨와 한 씨는 공장에서 버려진 자투리 원단과 새활용을 기다리는 각종 소재도 모았다. 그들은 쓰임을 잃은 재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직접 씻고 디자인하고 재봉질을 한다. 어망과 폐천막, 자투리천으로 백팩은 물론 에어팟 케이스, 돗자리, 컵방석, 텀블러백, 주머니 등을 만들었다. 또 남해에 버려진 해양폐기물을 사진으로 찍어 엽서와 벽보를 제작했다.

▲ 키토부 컵방석. /김민지 기자
▲ 키토부 컵방석. /김민지 기자
▲ 키토부 텀블러백. /김민지 기자
▲ 키토부 텀블러백. /김민지 기자

◇작은 움직임이 큰 물결 되길 = 키토부는 남해 삼동면 작업실 일부 공간에 업사이클링 잡화점을 올해 만들었다. 그들의 흔적과 활동을 공유하고 판매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폐물에 새롭게 미(美)와 목적성을 부여하는 작업 외에도 중고장터 '미러볼장', 사용하지 않는 종이가방이나 비닐 백을 기부받는 '쇼핑백바다'를 운영한다. 이 같은 활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물건의 가치를 재발견할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김 씨는 "남해에서 자란 시간이 긴데 바다를 걷다 보면 그물더미, 거대 플라스틱,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철제들…. 바다가 이렇게 오염되고 있다는 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알게 됐다"며 "그간 예쁜 바다, 반짝이는 바다만 보느라 이면을 보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그 이면이 비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씨는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환경운동가가 되어야겠다, 세상을 바꿔야겠다 같은 거대한 마음은 없었다"며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내가 또 다른 재료를 찾았고 그 재료가 사람들에게 환경을 알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고 말했다.

키토부는 앞으로도 자신이 잘하는, 그들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다양한 작업을 할 예정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