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아구할매, 35년차 방송인 김혜란

1962년생 4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일찍 철이 들었다. 장녀인 그는 혼자서 자신의 삶을 감당하느라 똑똑한 반항아의 기질을 갖게 되었다. 성지여고에 다니던 때, 자유로운 그의 영혼을 가두는 가톨릭 학교의 엄격한 교풍을 이기는 나름의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백일장에 다녔고 정일근, 우무석 등 당시 빛나던 문청 선배들을 우러르며 시를 쓰고 꿈을 키웠다.

경북대 영문과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결국 진학의 꿈을 접고 부림종합백화점 지하의 액세서리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 그래도 대학을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창원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뒤 학교 방송국에 들어가 장학금 기준 학점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활동에 몰입했다. 졸업 후의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1985년, 마산MBC에서 제1회 DJ콘테스트가 열렸다. 주저 없이 참가해서 당시 모 도시 시장의 아들, 그리고 음악다방 유명 DJ였던 김시경과 함께 학생이던 그가 3등으로 뽑혔다.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인기'
'아구할매'로 울리고 웃기기도
언론 순기능 보탬되고자 노력

입상 후 마산MBC <별이 빛나는 밤에>를 곧바로 맡아 인기를 누렸다. 큰 화제가 됐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에 각 지역 출신 대학생들이 출신지역의 별밤 DJ를 소개할 때, 주인공 나정이 마산의 별밤 지기로 김혜란을 언급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당시는 DJ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시간당 받는 출연료는 쥐꼬리 수준이었고 곧 TV에서 청소년 프로그램 진행자와 리포터를 겸업하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했다. 아이를 낳고 방송복귀를 원했지만 프리랜서는 방송의 도구로 소모된다고 여기던 시절이라, 7∼8개월의 억지 공백을 가진 뒤에야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 가요응접실, 정오의 희망곡, 아침의 행진 등 FM음악방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게 됐다.

▲ 원조 아구할매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방송인 김혜란 씨.

그러다 당시 임혜숙 프로듀서와 의기투합해서 <정오의 희망곡> 한 코너로 그 유명한 '아구할매'를 탄생시켰다.'아구할매'와 '미더덕할배' 둘 중 고민하다가 아구할매가 낙점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왜 방송에서 사투리를 쓰느냐는 항의도 있었지만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코너를 저녁시간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광장>으로 옮기고 난 뒤 임혜숙 제작, 박미경 글, 김혜란 진행의 3박자가 잘 맞았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렇게 진행하기를 10년, 당시 프로듀서 진행이 유행하던 때에 임혜숙 PD가 직접 진행하기를 원했고, 그는 작가로 아구할매를 놓치지는 않았지만 프로그램은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이즈음 PSB(KNN 전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둥지를 옮겨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창원으로 돌아온 지 6년, TBN 경남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를 비롯, 몇몇 프로그램 진행과 작가를 꽤 오래 했고 현재 <빛나는 저녁 김혜란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방송이 1주일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빠르게 잊혀 간다. 하지만 10년 만에 다시 창원으로 돌아온 그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구할매'로 남아있어서 감사와 함께 큰 책임감을 느꼈다. 앞으로 '아구할매'의 공적 기능을 어떻게 살리고 후배들에게 어떻게 제대로 된 방송인의 모습을 남길지 고민하고 있다. 입만으로 떠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글을 쓰고 기업과 사회 단체 등의 강사로 뛰고 있다. 스스로 낡지 않고 오래 방송하면서 언론의 순기능에 작은 역할이라도 보태고 싶어 한다. 방송인들이 그저 직업으로만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안타까워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산MBC 시절, 작가들과 함께 프리랜서 노조를 결성했던 일을 생각하며 방송은 1인 미디어 시대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이뤄진다고 믿는다. 지금도 세상은 다른 개성을 가진 자들과의 조화와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할 때 제대로 굴러간다는 진리를 매일매일 다시 깨치며 살아가는 중이다.

"안 훌륭하고 안 빛나모 어떻노, 잡초는 늘 베이고 뽑히도 또 살아나서 항거석 우거진다 아이가. 코로나 시대 잡초맨쿠로라도 살아 남자이." 35년 차 방송인, 원조 아구할매 김혜란의 전언이 따뜻하다.

 

그늘진 세상을 돌보는 창원의 희망지기 설미정

설미정, 저소득 홀몸 어르신들에게 쌀을 지원하는 '꽃들에게 희망을'지기인 그는 1970년 밀양생으로 성장기는 부산에서 보냈다. 88학번으로 경성대 물리학과를 다녔는데 대학 시절에 반핵 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을 계기로 26세 무렵 환경운동연합에 가입했던 것이 첫 사회운동의 시작이었다.

IMF 외환위기 즈음이던 1997년경 부모님이 계신 창원으로 이주했는데 계획도시였던 창원의 모습은 낯설고 삭막했다. 이 도시에 정을 주지 못하고 심리적 이질감을 겪던 그를 창원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은 사파동성아파트 내에 마을 도서관을 건립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 경남정보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인 창원 1호 마을 도서관 건립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사람들이 있는 도시라면 살 만하겠다 여겼다.

저소득층 가정 밑반찬·쌀 지원
'꽃들에게 희망을' 지속 활동
지역 환경단체 공동대표로
〈기후시민백과〉 다큐 제작도

당시 마을도서관 봉사자, 주민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바자회를 열고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 기관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재활용품을 모아서 아나바다 장터를 열고 경로당과 동보원, 민들레 공부방 등을 도왔다. 그런데 당시 창원YWCA, 실업자센터 등에서 비슷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들만의 특색있는 활동을 고민하게 됐다. 3년여의 시간 동안 쌓인 경험도 살리고 의미는 그대로 이어나가자는 생각으로 당시 함께 활동하던 마을 주민이자 동네 언니들 15명과 함께 의기투합해서 저소득층 아동의 가정에 밑반찬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마침 대학원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회복지 공부의 이론도 살릴 기회가 됐다. 그것이 지금은 매월 저소득층 100가정에 사랑의 쌀을, 30가정에 밑반찬을 전하는 '꽃들에게 희망을'로 컸다.

그는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꽃들에게 희망을' 사무실에서 쌀을 모으고 나누는 데 쓰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로, 동거인인 김재한 영화감독을 도와 영화 제작자로,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해마다 배낭여행을 하는 여행학교 운영자로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소진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경계한다. 그래서 스스로 소진된다고 여기면 여행을 한다. 2003년 무렵,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중국으로 가서 1년여를 보내며 중국어와 세상과 사람을 공부했다. 그 시간은 그에게 자신이 행복해야 세상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하나 큰 메시지를 얻고 왔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즐겁고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과감히 내려놓는 마음도 배웠다.

그는 김재한 감독과 현재 동거 중이다.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가족이다. 이런 그에게 의구심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가족에 대한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자신이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는 것을 왜 국가의 제도에 일방적으로 맞추어야 하는지, 국가가 자신의 가족 형태에 간섭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그 생각을 실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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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필요한 일을 힘껏 돕는다. 그의 도움으로 김재한 감독은 열악한 제작 여건에도 2009년 <조용한 남자>를 시작으로 <안녕 투이>, <오장군의 발톱> 등을 제작했고 지금은 단편 뮤지컬 영화 <쏴 탕!>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개봉관 잡기도 힘들 만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안녕 투이>는 전 세계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그들에게 영화 제작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매년 입장료로 라면을 받는 '함께라면'영화제를 열고 이 라면을 이웃들에게 나누는 일도 하고 있다.

2020년 허성무 시장이 돝섬에서 수영하는 현장에 있었던 그는 오염됐던 바다가 다시 수영이 가능할 만큼 살아나는 감격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찬원 교수, 상남영화제작소 등에서 창원시민 펀딩으로 기금을 마련해 시민들의 슬기로운 기후 생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기후시민백과>를 제작한다. 그는 봉암갯벌의 열린 물길을 통해 창원의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그는 온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환경을, 그늘진 세상을 돌보는 창원의 희망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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