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몰린 456명 모여 게임
참가자들 깨운 트럼펫 협주곡
〈장학퀴즈〉 여는 곡으로도 친숙
요제프 하이든 마지막 기악곡
바이딩거 연주에 영감 받아
악기 한계 극복한 작품 창작

전 세계적으로 인기인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위세가 놀랍다. 1억 명이란 시청률을 매체 사상 최단 시간으로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한 배우와 소품, 그리고 K게임들이 화제이며 저 먼 아프리카까지 아우른다. 억지 애국심을 전파하기 위해 별것 아닌 것을 과대포장하던 시절을 겪었으니 '진짜?' 싶었지만 요즈음의 K트렌드는 실재일 뿐 아니라 그 파급력 또한 대단하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플랫폼에서마저 K콘텐츠는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잔혹한 게임의 시작 = 인생의 벼랑 끝에 선 기훈, 그는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경마장을 전전하며 세월을 허비한다. 돈을 벌고 싶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백수 삶을 몸이 힘겨운 노모의 시장일에 의지해 근근이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그의 유일한 행복이라 할 딸아이와의 만남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모두가 돈이 없어 벌어지는 일이며 이러한, 어쩌면 가장 삶의 근본이라 할 생계와 부양의 문제도 해결 방법이 없어 더욱 초라하고 비참할 뿐이다.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다 지하철에서 마주한 게임의 제안, 이기면 돈으로 보상받지만 진다면 뺨을 내어주면 되는 어쩌면 그에겐 달콤한 기회. 실컷 얻어맞아 뺨이 붉은 기훈은 마침내 얻은 승리에 역시 상대의 뺨을 요구하지만 쥐여주는 돈에 복수의 기회를 그저 내어준다. 그렇게 자존심과 고통을 바꾸어 얻은 것은 달콤했다. 그리고 이제 얻는 것이 크기에 자신의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걸어야만 하는 잔혹한 게임이 시작된다. 사연은 다르지만 처지는 비슷한 456명이 모여 노리는 마지막 인생역전의 기회. 언제든 멈출 수 있지만 누구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그런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트럼펫 협주곡 = 게임의 첫날, 참가자들의 억지 잠을 깨우는 익숙한 선율이 있다. 어쩌면 이 선율만으로도 게임을 하는 내용인가 보다 짐작한 이들도 있겠다. <장학퀴즈>의 시그널로 사용되어 7080세대에겐 귀설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지만 현 세대에겐 그저 학구적 장면에서 가끔 사용되어 그리 친숙하지 않았던, 하지만 <오징어게임>을 통해 기억하게 될 곡. 바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1732~1809)의 '트럼펫 협주곡' (Trumpet Concerto in E flat major, Hob. VIIe:1)이다. 작곡가의 전체 이름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 가끔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음반을 구한 후 기대했던 영화 속 유명한 선율이 아니라며 실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먼저 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작품 속 1악장만을 들은 경우다. 이때는 찬찬히 3개의 악장을 모두 들어보면 된다. 그러다 3악장에 이르면 기대했던 선율을 만날 것이다. 다음 이유로는 아예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구한 경우다. 이렇게 헛갈릴 수 있는 이유는 작곡가의 성이 같기 때문이다. 그 작곡가는 바로 '미하엘 하이든'. 그는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이자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하며 형만큼이나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이자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 37번의 주인임이 밝혀져 그 번호가 비도록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또한 멋진 트럼펫 협주곡을 남겼기에 찾던 것과 다른 것을 집어 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명작을 우연히 만난 것이니 반가울 일이다.

◇요제프 하이든 = 1732년 대장간 집 장남으로 태어난 요제프 하이든 (이후 하이든),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으며 8세의 나이에 빈 소년 합창단의 전신이자 작곡가 슈베르트 역시 활동했던 성 슈테판 대성당의 합창단 단원이 된다.

활동 중 그의 너무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해 '카스트라토'(변성기 전 남성 거세 가수) 제안을 받기도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니 하마터면 위대한 작곡가를 잃을 뻔한 순간이었다. 이후 합창단을 떠나 지속적으로 음악과 연을 맺어나가던 하이든의 삶에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에스테르하지 공작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하이든이라는 작곡가를 언급하며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이름 에스테르하지. 그는 음악에 관한 투자에 인색함이 없는 열렬한 음악애호가였다. 그런 그의 궁정에서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음악가로서 행운이었으며 이는 무려 30여 년간 이어진다. 이동안 하이든의 음악적 역량은 커져갔고 그의 명성은 전 유럽에 걸쳐 높아져 간다. 그리고 이후 귀화를 제안할 정도로 하이든을 사랑했던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지만 조국을 끝내 떠나지 않는다.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과 80여 곡의 현악사중주를 완성한 다작 작곡가로도 유명하며 교향곡의 아버지,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위상은 단지 남겨진 작품의 수 때문이 아니다. 클래식의 대표 장르라 할 교향곡과 현악사중주의 양식, 그리고 소나타 형식의 틀을 확립한 이가 바로 하이든인 것이다. 하니 우리가 익히 아는 악장의 구성과 흐름의 틀이 그로부터 확립된 것이니 가히 놀라운 음악사적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그의 애칭인 '파파 하이든'이 단지 음악적 업적에서만이 아닌 그의 온화한 성품에서 온 것이라니 정겹기마저 하다.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안톤 바이딩거 = 그런 그가 원숙기에 이른 1796년, 64세의 나이로 트럼펫 협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이는 그의 마지막 기악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트럼펫은 아직 완벽하지 못해 음정과 표현에 여러 한계를 지닌 악기였다. 현재는 밸브가 장착되어 반음계 연주나 빠른 패시지에 어려움이 없으나 당시엔 이러한 장치가 없는 내추럴 트럼펫이 일반적이었으며 연주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한다.

이러한 난제에도 하이든으로 하여금 창작열을 불러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후배이자 빈 궁정악단의 트럼펫 주자 '안톤 바이딩거'(Anton Weidinger)다. 바이딩거는 당시 트럼펫의 거장으로 악기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을 뿐 아니라 자유로이 음계를 낼 수 있는 트럼펫을 고안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음악적 자극을 받은 하이든은 곧 작곡에 착수하였고 그 결과 이러한 명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니 훌륭한 연주자의 열정이 작곡가에게 얼마나 큰 영감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공정한 게임? = 영화(드라마)를 보고나니 하고 싶은 말도 기억나는, 아니 기억해야 하는 장면이 많다. 깐부 할아버지가 '그건 말이 되고?'라며 물을 때 마치 나를 향해 물은 듯 철렁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오징어게임에서는 암행어사라는 단어가 주는 기분 좋은 묵직함이 내려왔었고 '인생에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어쩌면 최초의 공정한 게임'이라는 말에는 악당의 궤변임에도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어진 질문, 저 너머 희망의 공간(To the moon)으로 날기(Fly me) 위한 방법이 모두 사라져 오직 타인을 밟고 일어서는 것만 남아 그렇게 체념을 핑계로 잔인해져만 가는 우리를 향해 던지는 질문, 그렇지만 언젠간 '당연하지'라며 정말 당연한 듯 대답해야 할 바로 그 질문.

"자네, 정말 아직도 인간을 믿나?"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 <오징어 게임> 한 장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