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후보자 등록제도 없고
합동연설이나 토론회 금지
조합원 인물 파악 어려워
현직과 비교해 도전자 불리

발의된 위탁선거법 개정안
여전히 국회 상임위 머물러
내년 선거 전 통과 불투명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 조합장선거는 풀뿌리 경제 일꾼을 뽑는 중요한 선거임에도 '깜깜이' '돈 선거' 등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탁선거법'상 허점을 보완한 대안이 수차례 제시되었고 이를 반영한 개정법안까지 발의됐지만, 통과는 요원한 상황이다.

조합원들은 조합장 선거에도 '예비후보자' 제도와 '정책토론회'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깜깜이' '돈 선거' 오명 =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 2023년 3월 8일 치러진다. 전국 1353개 농업협동조합(이하 농협)·수산업협동조합(이하 수협)·산림조합의 장을 뽑는 선거다. 경남 선거구는 총 170개(농협 116곳, 축산농협 18곳, 수협 18곳, 산림조합 18곳)이며, 투표소는 총 238곳이다. 이들 조합은 지역 경제 실핏줄을 담당하는 풀뿌리 조직이다.

조합장 선거는 군사정권 시기 임명제였다가 1988년 조합원 직선제로 바뀌었다. 금품 제공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조합이 2005년 선거사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고, 2015년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시작한 취지도 선거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동시선거를 시작했음에도 공명·청렴 선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남선관위는 지난 2019년 '제2회 동시조합장선거'에서 총 58건 위법행위를 적발해 18건을 고발했다. 그중 72.2%(13명)는 '기부행위', 즉 금품 등 향응 제공 의혹이었다. 제1회 동시조합장선거 때보다 고발 건수(24건)·비율(72.7%)에서 소폭 낮아졌지만, 다른 공직선거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경남경찰청이 지난 5일 밝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사범 수사 대상 434명 중 금품·향응 제공 유형은 20.7%(116명) 수준이었다. 

20221130 경남농협은 11월 30일 대회의실에서 '제3회 동시조합장선거 대비 공명선거 실천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남농협
20221130 경남농협은 11월 30일 대회의실에서 '제3회 동시조합장선거 대비 공명선거 실천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남농협

◇유혹 뿌리치기 어려운 구조 =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하 위탁선거법)'을 근거로 치른다. 그런데 위탁선거법은 공직선거법보다 선거운동을 엄격히 제한한다. 

대표적으로, 선거운동 기간은 후보자 등록 마감일 다음 날부터 선거일 전날까지 단 13일이다. 선거운동 방식도 △공보·벽보 △개인 전화 △조합 누리집 △전자우편 △공개된 장소에서 어깨띠 착용·명함 배부 등 6가지에 불과하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주체는 후보자 한 명이다. 예비후보자가 선거사무원을 두고 선거 90일 전부터 전화·문자 등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일반 공직선거와 대조적이다.

이는 무분별한 선거운동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찮다. 

대표적으로 현직-도전자 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도전자는 현직 조합장과의 인지도 차이를 좁힐 방법을 제한받는다. 현직 조합장은 조합 행사, 조합원 경조사 등 선거운동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자신을 알릴 길이 열려 있다. 조합원 집에 상시 방문하는 동책·면책 등 지역책임자들이 비공식 선거운동원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조합장은 업무상 취득한 조합원 연락처를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 있다. 반면 도전자는 연락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규정 위반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에서는 인지도에서 밀린 후보자가 자신의 청사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전략을 쓰지만, 조합장 선거에서는 이마저 어렵다. 후보자 합동연설회나 언론기관 대담· 토론회를 열 기회도 차단돼 있어서다. 반면, 현직 조합장들은 조합의 기존 정책 홍보만으로도 충분히 정견을 알릴 수 있다. 이는 유권자인 조합원들의 알 권리까지 침해하는 셈이다. 실제 지난 제2회 동시조합장선거 당시 현직 출마자 118명 가운데 71.2%에 해당하는 84명이 당선됐다. 

◇대안 담은 개정법은 국회 표류 = 동시조합장선거 관련 대안은 제1회 선거 이후 계속해서 제시됐다. 한국선거협회는 제2회 조합장선거 이후 '조합장 위탁선거법,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전문가 숙의를 끌어냈다.

중앙선관위 출신 안병도 변호사는 △공직선거법 기준에 따른 선거사무장·사무원 등록 허용 △인터넷·문자메시지 상시 선거운동 허용 △예비후보 등록제 도입 △조합원 선거운동 허용 △공개 토론회 부활 등을 제시했다. '돈 선거'를 뿌리뽑기 위한 대안으로는 △조합 예산을 활용한 선심성 지출(생일선물 등) 예산 편성 금지 △비조합장 후보 기부행위 상시 제한 △금품 수수 조합원에게 과태료 100배 부과 △돈 선거 제보 포상금 지급 등이다. 

이 중 몇 가지를 반영한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이미 오래전 발의됐다. 

김승남(더불어민주당·전남 고흥보성군) 국회의원은 2020년 대표발의한 두 차례 개정안에서 시군구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 대담·토론회 개최,  후보자 배우자·직계존비속 선거운동 허용 등을 담았다. 

위성곤(더불어민주당·제주 서귀포) 의원은 지난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서 조합장 선거 예비후보자 제도 도입, 모든 누리집·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한 선거운동 허용, 후보자에게 조합원 가상 전화번호 제공 등을 포함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들은 현재 국회 상임위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김승남 의원 개정안은 발의 2년 만인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 넘겨졌지만, 올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김승남 의원실은 "제3회 조합장선거가 다가온 만큼 시급한 사안이라는 문제의식을 안고 있다"라며 "개정안이 12월 임시국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이번 제3회 선거 역시 기존 폐해를 되풀이할 것으로 보인다.

장호봉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남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제도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비조합장 후보들이 불법 선거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라며 개정안 통과 절박함을 강조했다. 

장 위원장은 "현 조합장이나 직원들은 수시로 조합원들을 만나지만, 도전자는 불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사전선거운동에 걸리지 않도록 예비후보자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며 "후보자 정견을 미리 살필 수 있는 정책토론회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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