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활동의 역사 그린 책 발간
이주민 인권 보장 위해 내딛는 한 걸음
'이주민 만인보' 시작점으로 평가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 안에 이주민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 성장 속도에 맞춰 ‘산업기술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이주 노동자를 들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국제결혼이 인기를 끈다. 혼기를 놓친 농촌 총각들은 중국 교포나 동남아 국가 여성과 결혼했다. ‘이주 결혼 여성’이 생겨나고 다문화 가정이 만들어진다.

어느덧 한국은 이주 사회가 됐다. 지난해 인권의식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이주민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주민 인권이 존중된다는 응답은 36.2%에 그친다. 그들이 우리 이웃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웃이 누릴 인권까지 지켜주지는 못하고 있다.

희망은 있다.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과 만만한 배우자로만 보던 사회적 시선에 균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지난 3일 이주 활동가 6명(김나현·섹 알 마문·샤말 타파·또뚜야·차민다·놀리)의 목소리가 담긴 책 <곁을 만드는 사람>이 출간됐다.

또뚜야(왼쪽) 황금빛살미얀마공동체 활동가와 김나현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 센터장(오른쪽).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또뚜야(왼쪽) 황금빛살미얀마공동체 활동가와 김나현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 센터장(오른쪽).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잘사는 나라란 무엇인가 = 김나현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 센터장은 1995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왔다.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일하다 어울림이주여성다문화가족센터,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등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주민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면서 한국 사회 안에 남아있는 차별을 고스란히 느끼곤 했다. 소통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이주민 활동가보다 한국인 활동가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주민과 대화가 어렵더라도 시간과 인내심을 들여줬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랐다.

이주민 관련 뉴스를 볼 때면 이주민을 향한 한국인의 시선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김 센터장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이주민도 같은 사람이고 어렵게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이주민이 부당한 대우를 겪는다면 같이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은 많이 발전한 나라지만 이주민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정말 잘사는 나라인가 의문이 든다”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잘사는 나라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뚜야 황금빛살미얀마공동체 활동가는 미얀마 사람이다.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정착했다. 주로 이주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했다. 이주 노동자 권리 책자를 미얀마어로 번역하고,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도 한국에서 전개하고 있다.

“산업연수생 시절과 비교했을 때 이주민 인권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어요. 한국에서 이주민 인권은 저절로 좋아진 게 아니에요. 이주민·한국인 이주 활동가들이 손잡고 연대해서 싸웠기 때문이에요. 이 과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이제는 산업연수생이 아니라 고용허가제로 이주 노동자를 받고 있다. 농업·어업·제조업 등 고강도 노동은 이주 노동자 몫이 됐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문턱을 낮춰 이주 노동자를 늘리겠다고 공언한다.

또뚜야 씨는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사업주가 알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고 있다”며 “오래 일하면 이주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 정부도 길게는 3년까지만 이주 노동자를 체류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곁을 만드는 사람 곁에 = “환대를 넘어서서 진정한 연대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당사자의 생각 그대로를 넘어서 그 곁에 내가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주민 삶에 대해서 제대로 보고 들어야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주체로 서는 과정을 함께 해주는 것이요.”

<곁을 지키는 사람>을 기획한 이은주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는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 혐오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주민이 자기 권리를 확장했던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전시키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이은주 활동가는 2006년 의령군에 있는 한국주강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베트남 출신 호앙반랍 씨를 떠올렸다. 당시 이 활동가는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장례식장 안에는 국화꽃 한 송이 보이지 않고, 영정사진 한 장만 놓여있었다. 밥통 안에 지은 지 오래된 밥이 있었고, 반찬으로는 말라비틀어진 무말랭이만 나왔다. 회사에서 이주 노동자는 있으면 있는 대로 다 먹으니 주지 말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 활동가는 “회사에서 산재 처리도 없이 일방적으로 장례를 치르겠다고 해서 운구차 앞에 주저앉아 버텼다”며 “산재 처리해주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장례를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까만 밤이 되어서야 호앙반랍 씨는 화장터에 도착했다. 이 활동가는 불길 속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베트남 이주 노동자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그는 어떤 삶을 살다 갔고,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프레스에 양 손목이 잘린 네팔 여성 노동자, 지게차에 끼여 숨진 중국인 노동자와 그걸 목격한 아내 등 바다 건너 한국에서 다치거나 죽는 이주 노동자들을 지켜봤다. 이주 활동가가 ‘곁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 활동가는 ‘그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곁을 만드는 사람>을 이주민 ‘만인보’의 시작점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 활동가는 “앞으로는 더 많은 이주민과 이주 활동가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만들어서 공존하는 사회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이주 활동가를 연결하는 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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