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여건 개선하려 현장서 '고군분투'
20년 이상 타워크레인 운용 중단 물꼬
공사입찰사, 산재 이력 사전 공개 유도
여전히 위험한 현장·하도급 근절 과제
"어려워도 업계 전망 내놓을 수 있어야"

건설노동자 임금체불이 줄었다. 건설 현장에 없던 화장실과 휴식 공간도 생겼다. 8시간 노동에 유급휴일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건설노동조합이 만들어낸 변화다.

불법 다단계 시발점이던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임금 중간착취 근절, 유보임금 문제 개선, 타워크레인 장비 등록 등도 노조가 거둔 성과다. 심지어 건설노조는 사용자가 해야 할 안전 교육까지 조합비로 진행하기도 했다. 조합원뿐 아니라 모든 건설노동자를 위한 지원이었다.

◇현장 안전 문화 확산 = 불볕더위는 건설 현장에서 심각한 재해 요인이다. 그동안 현장 노동자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쓰러지고, 심지어 사망하기도 했다. 아무리 더워도 노동자들은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적당히 쉴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동조합이 나서면서 현장에서는 불볕더위 때마다 작업 중지가 가능해졌다. 더위뿐 아니다. 노동자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 비례해 작업을 멈출 조건도 늘었다.

자연재해든 산업재해든 건설사들은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감추기 급급하다. 특히 악질적인 사용자는 노동자가 사망해도 안전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노조는 산재를 은폐하는 건설사가 입찰하면 사전심사에 반영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요구가 관철되면서 현장에서는 산재 기록을 반영한 사전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산재 사고는 장비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벌어지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타워크레인이다. 건설 현장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장비지만, 한동안 건설기계로 등록되지 않아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었다.

노조는 60일 파업을 벌여 타워크레인 건설기계 장비 등록을 요구했다. 그 결과 2008년 건설기계 27번으로 등록됐다.

건설사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여러 대 써야 할 타워크레인을 한 대만 쓰기를 선호한다. 크레인을 고정하는 방식은 ‘와이어 지지’를 선호한다.

더 안정적인 ‘벽체 지지’ 방식을 피하는 이유 역시 비용이다. 태풍 등으로 타워크레인이 전복되는 사례를 들어 노동조합은 벽체 지지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이어졌다. 45m 이상 높이에서 작업하는 타워크레인은 풍속이 초속 15m를 넘으면 작업을 멈출 수 있도록 한 안전기준 개정도 끌어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타워크레인 운용기준 마련·산재 적용 = 장비 노후도 확인은 안전 점검사항 가운데 중요 항목 중 하나다. 그러나 정부는 관리·감독은커녕 노후 타워크레인의 경우 기준 자체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노조는 20년 이상 노후 타워크레인은 원칙적으로 사용을 중지하자고 요구하며 법 개정에 역할을 했다.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 안전까지 고려한 조치다.

작업 중 사고를 겪더라도 산재를 적용받지 못하던 건설기계 노동자가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도 노조 공이 컸다. 노조는 지속적인 요구로 크레인 등 건설기계 27개 기종 모두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안전 제도만큼이나 건설노동자들을 향한 지원이 부족한 것은 또 있다. 화장실과 탈의실·휴게실·식당 등 직원 지원 시설은 현장에서 늘 아쉽다.

노조는 건설노동자 인권과 보건 문제를 바로 잡고자 화장실·탈의실·식당·휴게실 설치 의무를 촉구해 법 개정을 유도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건설 현장에는 화장실을 남성 30명당 1기, 여성 20명당 1기씩 의무 설치해야 한다.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필요 = 3년 전부터 건설 현장에서는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공사 현장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발주자의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이다. 거기다 이 법은 그뿐 아니라 설계자·감리자·시공자·노동자·지방자치단체 등 건설공사 모든 주체에게 건설안전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경기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사고 발생 이후 2020년 9월 김교흥(더불어민주당·인천 서구갑) 국회의원이 최초 발의했다. 2021년 6월 재발의되고 나서도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사이에서는 관련 법 제정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건설업자 등은 법적 책임 의무 소재가 명확해지는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건설안전특별법은 모두가 안전 문제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면서 "사람이 죽는 문제를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예방법이지만, 발의된 지 4년 차가 된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까지 책임 소재와 의무를 규정한 법은 우리나라에 없다"면서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법안이기에 제정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한 일을 묵묵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용산 대통령집무실 방면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용산 대통령집무실 방면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하도급 근절·적정임금제 도입도 과제 = 건설 산업에는 불법 하도급 문제가 만연하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는 것은 물론 건설노동자 적정임금제를 도입하는 것도 당면 과제로 평가된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은 "다단계 하도급이나 부실 공사, 외국인 노동자 채용 등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점은 돈 문제와 연관된다"며 "원수급자부터 하수급자로 쭉 내려가다 보면 100원을 들여 해야 할 일을 50원 미만을 써서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심 전문위원은 "현장에서는 이런 과정을 '맞춰 먹는다'고 표현하는데 온갖 편법이 나오다 보니 가격 후려치기가 심하다"면서 "저가 수주 경쟁의 근원이 되는 문제를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공사는 직접 시공하되, 만약 재하도급을 주게 된다면 제값 받아 안전 지키고, 품질 지키고, 노동 여건도 나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게 적정임금제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여건상 국내 건설업은 노사가 제대로 협상조차 하기 어려운 구조다. 노조가 사용자와 마주 앉아 소통할 수 있는 초기업 교섭 구조 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독일, 호주 등과 같이 노사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산업 생산성을 높인 사례가 본받을 만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건설업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성찰하며 구조를 바꿔나가야 하는데 노동자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어 문제가 크다"며 "건설사 사장들은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사측은 돈을 깎아내리려고만 하니 결국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면서 "노사가 제도화된 틀 안에서 혁신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조는 본질적인 역할대로 노동자 처우 개선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면서 "업계 구조상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앞으로는 노조가 산업 전반에 대해 전망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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