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철 부산교육희망네크워크 상임대표 초청
18개 시민단체 참여 경남교육연대 강연 마련
교육부 장관 잇단 낙마에 자질 부족까지 비판
"만 5세 입학·늘봄학교 확대는 노동력 착취"
교육자유특구 추진에 학교 서열화 우려 제기
"통폐합 유도가 지역대학 살리기인가" 의견도

유네스코(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는 2021년 '교육의 미래 2050'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교육학은 오랫동안 지속해온 배제와 개인주의적 경쟁 방식을 대체해 협력과 연대의 원칙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며 "2050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성취에 대한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인 정의를 우선시하는 교육 방식, 수업과 측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출범 1년이 넘은 윤석열 정부는 교육 정책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고 있을까요? 시민사회에서는 오히려 교육 불평등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시민단체에서 마련한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현 정부 교육 정책을 둘러싼 우려를 살펴봤습니다.

 

18개 시민·학부모단체가 함께하는 경남교육연대는 지난 25일 창원시 성산구 비음로에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남지부 큰나눔터에서 '2023 상반기 강연회'를 열었다. 정한철 부산교육희망네크워크 상임대표가 '굥(윤을 뒤집은 단어)교육 해방선언, 윤 정부 교육 회귀와 시민사회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단에 섰다. 정 대표는 고교 서열화, 교사 정원 축소 등 현 정부 정책이 가져올 미래를 걱정했다.

◇교육수장 수난사 = 윤석열 정부는 교육수장 임명부터 부실했다고 평가받는다.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지명 20일 만에 사퇴했다. 두 자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령 등 '아빠 찬스' 의혹, '법인카드 쪼개기 결제' 의혹, 성폭력 교수 옹호 논란이 불거졌다. 현 정부 장관 후보자 중 첫 낙마 사례였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취임 한 달 만에 물러났다. 음주운전, 논문 중복 게재, 갑질 의혹 등에도 윤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국무위원 사임 첫 사례가 됐다. 특히 박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초등 입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보고했고, 학부모나 교육청과 사전 논의 없던 보고 내용이 알려지면서 교육 현장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을 지내며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를 도입해 "고교 서열화, 일반고 황폐화를 가져온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학업성취도평가 전수실시(일제고사)도 설계해 "학교를 문제풀이 학원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정한철 부산교육희망네크워크 상임대표가 '2023 경남교육연대 상반기 강연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과 시민사회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정한철 부산교육희망네크워크 상임대표가 '2023 경남교육연대 상반기 강연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과 시민사회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더 일하라"고 권하는 정부 = 교육부는 올 초 '늘봄학교(초등학생 방과 후 활동 지원)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전국 초교 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저녁 8시까지로 확대하고 아침·틈새·일시 등 돌봄 유형도 다양화하기로 했다. 경남교육청도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거점통합돌봄센터 늘봄 명서와 늘봄 상남을 열었다. 평일 오후 8시까지 운영, 초교 4학년까지 대상 확대가 특징이다.

정 대표는 "늘봄교실에서 아이들을 돌볼 테니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아버지는 마음 놓고 일하라는 말이며 자세히 보면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라면서 "과도한 노동 문화가 한국사회 고질병임에도 주 69시간제 이야기가 나오는 등 완전 반대로 가고 있다. 인구소멸 위기에서 정시 퇴근 문화를 정착 못 시키면 결국 소멸로 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더 빨리 노동력으로 쓰려고 5세 입학과 같은 정책이 나왔다. 5세 입학이나 늘봄학교 모두 경제계 논리나 의견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사 정원이 줄어드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 대표는 "정부는 사서교사나 보건교사처럼 늘봄교사로 직렬을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한다. 학교 안 비정규직 선생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기간제 교사 등을 정규 교사로 전환해주는 것이 맞지 않느냐"며 "전국 교사 48만 명 가운데 매년 5500명이 명예퇴직, 2000명이 정년퇴직하고 5년 미만 신규교사도 500명 이상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 매년 8000명 정도가 나가는데, 뽑는 사람은 절반밖에 안 된다. 교원 임용 규모는 계속 줄이고 있다"고 짚었다.

◇다시 고교 줄세우기? = 자사고 존치와 외국어고 유지가 현 교육부 방침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가 모두 일반고로 전환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 시행령에 다시 손을 댈 수 있다.

교육부는 '교육자유특구' 지정을 위한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안에서 '교육자유특구' 설치 조항은 빠졌다. 다만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통합' 조항이 포함됐다. 조희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서울시교육감)은 논평을 내고 "일반행정기관(지자체)에 교육행정기관(교육청)이 종속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교육자유특구법 연구용역 결과는 오는 9월 나올 예정이다. 학생 선발과 운영 방식 등이 구체화하면 다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교육자유특구 학교는 경제력이 있는 학부모 자녀를 위한 '귀족학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는 "고교 유형 다양화를 명목으로 정부가 예전 자사고와 비슷한 교육자유특구를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닌 자치단체 정책으로도 교육 양극화 우려가 제기된다. 창원시는 진해경제자유구역에 2029년 개교를 목표로 초·중·고교 통합과정 국제학교 설립을 추진한다. 정 대표는 "10년 전부터 인천, 제주 등에서 추진한 교육국제화특구 등 이미 실패한 교육 정책을 되살리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한철 부산교육희망네크워크 상임대표가 '2023 경남교육연대 상반기 강연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과 시민사회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정한철 부산교육희망네크워크 상임대표가 '2023 경남교육연대 상반기 강연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과 시민사회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지역 대학 죽이기? =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 인원 비율 확대'를 공약한 바 있다. 정 대표는 "정시 비율을 더 확대하면 지역 대학은 사실상 소멸해버릴 우려가 있다"며 "지역 국립대 총장이 대거 반대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19년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으로 서울 16개 대학의 2023학년도 정시 수능 위주 전형 선발 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올 2월 이주호 장관은 이 같은 비율을 당분간 손볼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지역 대학을 살리자고 해놓고 5년 동안 대학당 1000억 원을 지원하는 통폐합 프로젝트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1호 모델이 부산대와 부산교대가 될 듯한데, 여기에 인근 사립대를 붙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거점대학 1~2곳을 두고 통합하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밖에도 학령인구 감소로 초중고 교육재정 일부를 대학 교육에 투자하고자 신설한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정규 교사 운용 방향 등 청사진 없이 제시한 '유보통합'(유아교육과 어린이집 보육 통합), '자유민주주의'를 넣고 '성소수자'·'성평등' 등 표현을 뺀 '2022 개정 초·중등학교 및 특수학교 교육과정'에는 "근시안적 정책", "개악이자 퇴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는 대신 시·도지사 후보가 교육감 후보를 지명하는 '러닝메이트제' 도입 추진을 두고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라는 비판이 거셀 전망이다.

최근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통일교육 교수학습자료 점검 결과'를 보내 고전작품 <임꺽정> 활용을 배제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에 정 대표는 "월북 작가여서 교육과정에 못 쓰게 하는데, 이런 것이 시작이라고 본다. 교육에서 보수 성향이 짙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정 대표는 "국민이 지지하는 정책은 손을 못 댄다. 혁신학교도 눈엣가시로 여겨 보수 교육감이 없앨 줄 알았는데 시민 지지가 있으니까 일거에 폐지를 못하더라"며 "유럽에서 진행 중인 대학 무상교육도 국민적 지지가 있으면 우리나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동욱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