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어 재난 속보 전달 늦어져
비상상황 준비 어려운 현실 씁쓸

자취방에는 TV가 없다. 원래 챙겨 보는 TV 프로그램도 없었고, 그 대신 온갖 OTT 서비스를 번갈아 구독해왔기 때문에, 독립 초기 자취방을 채우면서도 TV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첫 독립, 월세이지만 처음 보금자리를 튼 한 칸짜리 방을 채운 건 당장 없으면 안 되는 물건들 위주였다. 옷이 많지 않음에도 사계절 옷을 모두 수납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옷장을 보완할 조립식 행거라든가,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TV 없이 지낸 지 벌써 만 2년이 넘었고, 그동안 단 한순간도 TV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이른 아침 울려대던 사이렌 소리의 원인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오전 10시였던 출근 시간을 8시로 바꾸면서 6시 기상이 어느 정도 몸에 익어가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 준비를 하던 6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 화면 위로 재난 문자가 떴다.

으레 자주 오던 안전 안내 문자겠거니 생각하던 것도 아주 잠시, 생경할 정도로 오랜만에 듣는 사이렌 소리에 문자를 다시 한 번 읽어나갔고, 위급 재난 문자라는 타이틀을 단 짧은 문자에는 경계경보 발령, 대피 준비 등의 아주 간결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인과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문자에 바로 인터넷 아이콘을 눌렀으나 유명 포털은 이미 서버가 터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밖에서는 알아듣기 어렵게 웅웅거리는, 그럼에도 상황의 심각성만은 분명히 담긴 '실제 상황'이라는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미지의 상황에 대한 불편한 기시감,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불안감에 빠르게 머리를 굴려 생각해 낸 것은 텍스트 기반이라 정보가 가장 빠르게 공유된다는 트위터였다. 예전에 만들어놓은 계정을 기억해 내 SNS에 접속하자,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는 글들 속에서 단편적이나마 관련 정보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스크롤을 내려 정보의 조각들을 머리에 정리해가면서 2년 만에 처음으로 TV를 들일 걸 그랬다고 짧은 후회를 했다. 언젠가, 위급한 재난 상황 등, 긴급한 정보 전달이 필요할 때면 목적 없이 켜놓은 TV에서 속보로 흘러나오던 뉴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경보 오발령 안내 문자가 왔고, 놀란 마음은 여전했지만 스스로를 잘 다독여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지하철에 올랐다. 마치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느 때와 같이 고요한 지하철 풍경 속에서, 생각의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급하게 주워담았던 정보들이 하나씩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경계경보와 공습경보의 차이, 가까운 대피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와 대피 장소의 조건, 비상시 필요한 물품 리스트 등, 어느 것 하나 평소에는 주의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었고, 준비해두지 못한 것들이었다.

자취방에는 TV가 없다. 전기·가스가 모두 끊긴 후 사용할 수 있는 가스버너나 양초, 건전지와 손전등 따위도 없다. 있는 거라곤 평상시에 갖추고 있지 않으면 당장 생활이 불가한 정도의 물품뿐이다. 비현실적인 좀비 사태에 무기로 휘두를 용도가 아니고서야, 실제 비상 상황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모르는 조립형 행거나 전자레인지 같은 것들.

만약을 대비하기 어려운 현실을 이렇게 새삼 깨닫게 될 때면, 어쩐지 조금 더 막막하고, 어쩌면 슬프기도 하다.

/정민송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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