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도 세상도 모르는 것투성이
좋은 날 오길 기대하며 한 걸음씩

"봄이 왔어"라고 누가 말해주지 않는데도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아침 바람에 온기가 묻어나올 때 특히 그렇다. 얇은 카펫을 깐 것처럼 온 땅 위에 초록 잎이 살포시 놓여있다. 이슬을 머금어 반짝거리는 새싹들은 언제 이만큼 자라 땅 위를 덮은 것일까. 언제 보아도 참 신기하다.

요즘 내가 모르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새들은 어디로 나는지, 꽃씨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밤마다 땅속을 부스럭거리는 두더지는 무슨 생각 하고 있을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

농사를 짓고 살면서 처음으로 밥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그전에는 이 밥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길러졌을까? 올해 농부에게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 매일 밥을 먹으면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처음 고구마 농사를 짓던 해. 나는 내가 꼭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마 한 줄기가 나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필요한지 말이다.

앞으로 계속 농사를 지어나가면, 이렇게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알게 되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로 11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드는 생각은 이거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일투성이구나.'

농사일은 '실력을 쌓아서 더 잘하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물론 많은 선생님에게 작물을 더 잘 키워내는 방법을 배웠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20년 넘게 농사지은 선생님들도, 농사가 잘 안 되는 해가 있었다. 농사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작물들은 스스로 커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뿐이었다.

때로는 그것이 우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농부가 온종일 물을 뿌려대도 잠깐 내린 소나기만 못하다면,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지?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을 만났을 때. 지금까지의 순간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다. 발치에 걸리는 민들레 홀씨를 툭툭 날리면서, 나는 떨어진 솔잎들이 조곡조곡 밟히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다 햇빛이 노랗게 하늘을 물들였는지, 솔잎이 내 발치에 떨어져 걸음을 더 사뿐거리게 해주는지. 나는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기분 좋은 모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거나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나에게 보여준다. 어떨 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새 발의 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농사일은 때로 몹시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어떨 때는 자연이 나에게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질경이도, 쇠뜨기도, 쑥도, 괭이밥도 온몸으로 나를 받아준다. 그 소중한 순간이 나를 또 한 걸음 걷게 한다.

여전히 어려운 세상살이지만,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발걸음이 유난히 사뿐거리는 날, 내가 내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되는 날 말이다.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모르는 것투성이인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 내밀어 본다.

/김수연 청년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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