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 농사의 신은 고조선 '고시'
은덕 잊지 않고자 이어져 온 '고시레'

우리 농사와 농촌문화가 생겨나고 얼개가 짜진 바탕을 모두 중국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런 일이 생긴 것은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한국 고대사를 부정·왜곡한 일본 학자들과 그들을 도운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의도적인 짓이었다.

중국 기록인 <삼국지위지동이전>을 비롯한 몇몇 중국 기록물에 겨우 몇 줄 정도 나와 있는 한국 고대사 내용을 따르면서, 한국 고대사는 오로지 중국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자랑하듯 해왔다. 가장 부끄러운 것은 우리의 문자가 없다 보니 중국 문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묻는다. 우리나라 농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농기구인 쟁기, 곡식을 빻을 때 쓰이는 맷돌이 과연 어디에서, 어떤 이들이 만들었으며, 어느 경로를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해졌을까? 절대로 중국, 중국인은 아니다. 인류 최초로 대규모 밀농사를 지었던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농부들이었다. 물레방아, 수차는 고대 이란의 문화유산이고, 수레와 달구지는 이집트다. 낫, 호미, 괭이는 튀르키예인들의 문화유산이다. 그 물건들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도 중국이 아니다. 유라시아 북부 알타이 초원지대에 동서로 넓게 열린 통로를 거쳐 만주땅을 개척한 고조선, 부여, 고구려에 전해진 것들이다. 다만 볍씨와 관련된 농사법 일부는 중국 남부지방에서 전해졌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인물이 또 있다. 중국 문명사에서 벼농사를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은 후직(后稷)이며, 우리나라 사람들도 후직을 농사의 신이라고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 옛사람들과 현세 농민들은 우리나라 농사의 신은 후직이 아니라 고조선 때 농사짓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사람인 '고시'라고 믿고 있다. 고시의 은혜를 잊지 않고 대를 물리며 칭송하는 정성은 음식 먹을 적마다 자신의 입에 넣기 전에 먼저 음식을 종류별로 조금씩 떼어서 허공으로 던지면서 '고시레'라고 외친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그리스도교 종교의식이나, 이 음식이 어디서 왔으며 내가 이 음식을 먹을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 불교의식, 밥상머리에서 언제나 '잘 먹겠습니다' 하는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예절의 오래된 뿌리의식인 셈이다. 4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시레'는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다지 머지않은 지난날 농촌에서는 들판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남의 집에서 음식이 들어오면 그 음식 가짓수대로 조금씩 떼어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 또는 그리하는 짓이 '고시레'였다. 이 '고시레'에 깃들어 있는 신앙적 의미는 아주 특별하다. 고시레를 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몸에 탈이 나거나 재앙을 받게 된다는 세속적 믿음이다. 음식을 허공에다 던지는 것은 음식을 따라온 액이나 재앙을 물리치려는 주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곡식을 심어 가꾸고 거두어 장만한 음식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살아가게 되었고, 식량을 모아 집안이 번성하고 나라가 평화롭게 이어져 온 데는 '고시'의 은덕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 은혜와 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겨레 어진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 주문이나 신앙적 가치 체계로 확장되어 우리 겨레의 아름다운 도덕이 자라난 것이리라. 그리고 배고픈 이와 음식을 나누고, 굶주리는 이를 보살피는 한국인 인정의 모태이기도 했음이리라. 농사와 농촌 문명이 우리를 사람답게 살게 해 준 가르침이기도 했으리라.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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