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015년 현장서 국가폭력 목격
2019년부터 치유·공동체 회복 힘써
"영화 세상 바꾸는 도구, 활용법 고민"
밀양 송전탑 다룬 장편 영화 준비 중

여전히 밀양을 향하는 박배일(40)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을 지난 6일 김해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 감독은 끝나지 않은 밀양 송전탑 투쟁 이야기를 담은 단편 <얼굴의 땅>을 지난달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했다. 오는 21일에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장편 <사상>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상>은 수십 년간 쌓아온 공동체를 파괴한 자본의 흔적을 다룬 다큐다.

▲ 박배일 감독이 지난 6일 김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박배일 감독이 지난 6일 김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밀양이라는 존재의 밀알 = 박 감독을 처음 만난 건 2013년 11월 22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서다. 지금은 사라진 창동예술소극장에서 그가 제작한 영화 <밀양전>(2013) 공동체 상영이 있던 날이었다. 2021년 9월 15일, 7년 만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밀양에 있었다. 할머니와 이야기 중이니 다시 통화하자며 끊는다. 나중에 들었더니 추석 전이라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단다. 명절이 아니어도 이미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문턱이 닳도록 밀양을 찾는 그였다.

한동안 발길이 뜸한 적도 있었다. 2012∼2015년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 과정 한가운데 그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아픔을 다시 마주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밀양으로 향했다. 어르신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2019년 다시 밀양을 찾았다.

"몸에 쇠사슬을 묶고 싸웠던 강건했던 할머니에게 국가폭력 후유증이 찾아왔음을 직감했습니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만나러 갔죠. 혼자가 아니라 예술인들과 함께 갔습니다. 촬영하는 건 제 몫이지만 같이 몸을 움직이고 그림을 그리는 치유활동을 현재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술 협업프로젝트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서'로 안부를 묻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박 감독은 <봄을 품을 사람들>(2020)과 <얼굴의 땅>(2021) 단편 두 편을 제작했다. 또한 미술·음악·무용 장르별 예술인들이 밀양을 찾아 공동체 회복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엽서를 함께 만들거나 밀양 소리를 담아 작곡하고, 안무놀이로 서로 마주하고 있다.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함께 온라인 기록관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주민들이 쌓아온 시간을 기록하고, 또 다른 밀양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어 할머니들 경험을 나누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 단편 다큐멘터리 <얼굴의 땅>.  /스틸컷
▲ 단편 다큐멘터리 <얼굴의 땅>. /스틸컷

◇감독과 활동가, 내적 갈등을 지나오며 = 밀양은 창작자와 활동가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를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 공간이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송전탑 반대 투쟁에 결합하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가지고 현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던 시기입니다. 이제는 밀양에 갈 때 영화는 하나의 도구이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영화를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는 편입니다."

박 감독은 <밀양전>, <밀양아리랑>(2015) 이후 또 다른 현장을 누볐다. 부산에서 생탁 노동자 투쟁을 담아 <깨어난 침묵>(2016)을 만들 때도, 경북 성주군 소성리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 이야기를 그린 <소성리>(2018)를 제작할 때도 밀양은 늘 마음에 남았다. 현재는 밀양 송전탑과 핵발전소 이야기를 연결한 세 번째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밀양에 다시 들어간다며 주문을 걸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묻더군요. 도대체 밀양은 박배일 너한테 어떤 의미냐고. 그때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는데요.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밀양은 어느새 제 일부가 됐습니다."

투쟁의 흔적은 곳곳에 어둠을 내리고 있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철탑 아래서 밭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 그 멍울을 안고 사는 할머니를 놓지 못하는 게 아닐까.

◇다큐창작공동체 오지필름 10년 생존기 = 2011년 1월 3일에 설립된 오지필름은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오지필름>이라는 단행본도 발간했다. 박배일을 비롯해 김주미·권혜린·문창현 감독 4명이 각자 글을 쓰고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한 결과물을 내놨다. 그들은 오지필름을 '독립다큐멘터리 창작공동체'라고 명한다. 박 감독이 이름 지은 오지필름, 그의 표현대로 오지를 오지게 찾아다니고 있다고.

'오지는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뜻한다. 누구나 잊기도 지나치기도 쉬우며, 존재를 부정할 수도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쉬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의 가치가 점점 옅어지는 현실. 오지필름은 독립다큐멘터리를 매개로 오지와 세상을 연결하고자 했다. 소외된 이들이 세상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고, 어느 때는 직접 맞잡는 단단한 손이 되고자 했다.' (<오지필름> 10쪽)

10년 된 다큐 창작공동체가 장편만 11편을 제작했다. "같이 활동하던 동료가 저를 포함해 2명인 적도 있고 지금은 가장 많은 4명입니다. 10년 흔적을 돌아보며,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다큐멘터리를 하는 많은 이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배일 감독 주요 작품

<나비와 바다>(2013)

뇌병변 장애인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 그려

<밀양아리랑>(2015)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에 관한 기록

<깨어난 침묵>(2016)

부산 생탁 노동자 노동3권 보장 목소리 담아

<소성리>(2018)

경북 성주군 소성리 사드 배치 반대 투쟁 기록

<사상>(2021)

자본이 할퀴고 간 공동체 그 안에 남은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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