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었으면 하는 신문 1면 말고거짓말처럼 웃음만 나오는 신문 1면,터무니없는 기대가 아니라고 믿어본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우리가 기다리는 뉴스,반드시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믿어본다. 거짓말 같지만,내 한 표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임정애 기자
어느 사무실. 누군가 재활용 폐지수거함에 내던져놓은 휴지 뭉치. 쓰레기통이 없는 것도 아닌데 드물지 않게 이런 광경을 볼 때.생각한다, 그대들의 지성은 어디에다 쓰고 있는가. 지성이란 무엇인가./임정애 기자
전화기 너머로도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이 울음을 삼키고 있다는걸. 그날 이후로 매일 당신의 하루하루가, 더불어 나의 하루하루가 그저 평온하기를 바랐어요. 일년 내내 바라볼 달력을 고르는 데 며칠을 고민하고 먼 가게를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는 건, 그런 간절한 기도 같은 것이었습니다.문구점에서 2024년 탁상 달력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꽤 많은 사람이 여러 크기의 수첩과 일기장과 달력을 사 가는 걸 보았어요. 그들도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선물할 그 '날짜'들이 따뜻하고 달콤한 기억으로만 채워지길 바라겠지요. 그들의 소망
어떤 날에는 괜히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고 싶었다. 괜히 구멍가게를 찾아, 괜히 껌을 한 통 사고, 괜히 1000원짜리를 동전으로 바꿔, 괜히 골목을 돌고 돌아서, 어느 빛바랜 사진 속 유물같이 쓸쓸하게 서 있는 공중전화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고는 어느 때부터인가 외우지 않아도 생생히 떠오르는 전화번호를, 괜히 느린 화면처럼 하나하나 소리 내 말해가며 꾹꾹 눌러보는 것이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면, 공중전화가 보여서 괜히 걸어봤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괜히 그리운 날에./임정애 기자
계절이 꺾였다.인연도 꺾인다.할 만큼 했다,는 말이귓가에 쟁쟁 울렸다.마지막 모습은퍽 슬프기도 했지만뜨겁지도 않았으면서 도망쳐버린어떤 이처럼비겁하지는 않았으니그걸로 됐다.한 시절을 불사른너의 새 시작을응원한다./임정애 기자
또 한 번 한숨을 내쉴 때, 자꾸만 고개가 처질 때, 비죽 스며 나오는 눈물을 닦을 때, 문득 내 앞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 헤매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바라봤다. 들끓던 마음도, 머리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낯선 담벼락이 안겨준 한 폭의 휴식. 어쩌면 동동거리고 사느라 내가 자주 놓쳤을지 모를./임정애 기자
[제자리] 명사. 본래 있던 자리.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것, 있지 않아야 할 자리에 있는 것, 누군가에게는 불편에서 끝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곧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일.제발, 쓰신 물건은 제자리에./임정애 기자
시린 겨울도 있었다. 캄캄한 밤도 있었다. 매서운 비바람 속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날도 있었다. 살다 보니 그랬다.그래도 가끔은 이런 날이 온다.낯선 동네 어느 길가에 앉아 막걸리를 따르고 마시려는 순간, 하필 그때 사발 속으로, 툭, 떨어지는 봄꽃. 삶이 안개 가득한 어딘가를 헤매는 것 같다던 네 얼굴에 그 꽃보다 더 화사한 웃음이 소르르 피어오르는.뜻밖의 선물 같은 날. 우리에게만 온 행운 같은 날./임정애 기자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새삼 너를 보았단다. '우회전 시 일시정지'. 눈높이에서 형형하게, 좀 쳐다보라고, 매일 그렇게 너를 드러내고 있었을 텐데 어쩜 이제야 발견했을까.그런데 이미 너는 조금 위태롭구나. 모서리가 들려 떨어질 듯한 모습이구나. 해서, 다시 잘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일던 참이었는데, 그런데 말이다.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를 다시 단단하게 붙여주는 일이 없어야 하겠구나, 차라리 너를 빨리 떼어내어야 좋겠구나, 하는 생각. 네 온몸을 내걸고 그렇게 부르짖지 않아도 누구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우회전 시 일시정지'한
산 아래 절 마당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그 속에는 마르지 않는 하늘과 마르지 않는 나무와 마르지 않는 빛, 바람도 있다. 그리고 마르지 않는 꿈, 꿈들….한 아이가 던진 동전이 퐁당 떨어진다. 다른 동전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일렁이는 물결 안에서 동전들은 함께 더욱 반짝인다. 저 동전의 주인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에서 어떤 나날을 보내더라도 당신의 간절한 마음은 여전히 여기서 빛을 내고 있다는 걸.저무는 올해 끝자락에도, 새해에도, 마르지 않을 당신의 꿈이 여기 있다는 걸./임정애 기자
체크카드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새 카드는 카카오 먹통 사태 직후 날아왔다. 카카오페이가 바뀐 카드 정보를 등록하라고 한다. 터치 몇 번만 하면 끝날 일. 그런데 한참 바라보게 됐다.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취급하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라는데, 실소가 나온다. 아닌 줄 안다. 아닌 줄 알면서도 사용 약관에 동의하고 만다. 이런 식으로 넘어간 내 개인정보는 이미 수차례 어디론가 새어나가고 팔려갔다.그런데 인질이 된 내 개인정보가 또 내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한 먹통 사태라니. 신종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임정애 기자
수십 년 만의 폭우가 쏟아지고 강물이 녹색으로 변하고 여름은 더 덥고 길어진다. 빠르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그 안에서도 '천천히' 자기 길을 가는, 속도보다 가치있는 것들을 지키고 실천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오겠지. 그들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임정애 기자
작은 달항아리에 눈을 바짝 댄다. 꽃병으로 쓰려고 2주 전 빚어 초벌한 것이다. 표면을 살피며 매끄럽게 다듬는데 밑동에 실금이 눈에 들어온다. 물기가 있는 흙일 때는 보이지 않다가 말리고 굽는 과정에서 드러난 균열이다. 사실은 벌써부터 거기 있었고, 나에게서 비롯된….흙 반죽 안에 공기가 들어가거나 반죽을 이어붙일 때 생기는 틈을 속까지 잘 메꾸지 않으면 끝내는 사달이 난다. 말랑한 흙을 펴고 쌓아 모양을 잡아놓고 보면 꽤 완벽해 보이지만 수분이 날아가고 흙이 단단하게 굳으면서 이내 부실은 터져 나온다. 애써 만든 기물이 변형되거나
이건 개똥 이야기다.이른 아침부터 동네가 시끄럽다. 닫아놓은 창문을 뚫고 새된 고함이 들린다. 조용하던 골목에 웬 일인가 싶어 소리를 좇았다.- 한두 번도 아이고 작게나 싸나. 사람 똥만한 거를 맨날 남의 집 앞에 와서 싸고.- 그거를 와 우리한테 그랍니꺼. 개 키우는 집이 우리뿐이가. 우리가 그라는 거를 봤습니꺼.- 꼭 봐야 아나. 쌌으모 치우기나 하든가. 휴지만 덮어놓고 가면 누구 보고 치우라는 긴데. 내가 열불이 안 터지게 생겼나.-하이고 참, 우리 개는 그런 짓 안합니더.대충 이랬다. 개똥이 발단이었다. 얼마 전 캄캄한 밤,
편집부의 봄은 야구와 함께 옵니다. 한국프로야구 정규 시즌 개막이 가까워질 때 또 다른 신문 하나를 준비하거든요. 창원 기반 프로구단 NC다이노스가 생긴 이후 시작한 작업으로, 결과물은 'NC다이노스 특별판'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선수 정보·각오를 지역민에게 전하고 지역민 응원·기대를 NC에 전하는, 좀 낯 간지러운 표현이지만 '사랑의 오작교'랄까요. 아, 지역 구단을 향한 지역신문의 애정이기도 합니다.시즌 시작 한 달 전부터 편집부는 분주해집니다. 개막 경기 날짜와 장소, NC의 새 시즌 구호를 확인합니다. 특별판을
2분 50초. 침묵.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한참인 듯도 했다. 여전히 음악은 흘러나오고 소녀는 숨을 몰아쉬며 얼음 위를 내달린다. 하지만 어떤 순간보다 고요했다. 아니 적막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 침묵이 차가웠으므로.금지 약물을 사용한 것이 적발된 선수가, 그럼에도 올림픽 피겨 경기에 출전했다. 그가 연기를 시작하자 방송 중계를 맡은 해설자들은 입을 닫았다. "올림픽 정신은 죽었다" 이미 수없이 쏟아진 일갈, 그것보다 더 매섭고 묵직한 침묵이었다. 윤리와 공정을 팽개친 선수와 그를 그리 만든 어른들을 향한 꾸짖음·항의·안타까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왼다. 미국 뉴욕 시민들이 눈 부릅뜨고 달고나 뽑기에 매달린다. 일흔여덟 살, 58년 경력의 배우 오영수가 골든글로브 연기상을 받았다. 세계도 한국도 드라마 에 아직 빠져있다.그룹 BTS, 영화 과 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콘텐츠다. 그보다 앞에는 한국 음식, 화장품이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대응한 방역대책이 호평을 받아 '코리아'를 더 널리 알렸다. 2020~2021년 코로나19 암흑기 속에서도 총생산
"내 걸음이 더 더뎌지기 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눈물을 훔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손을 붙잡는다. 버티어 온 생 자체가 일본 정부에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으려는 투쟁이고, 수십 년 투쟁에도 결말을 보지 못해 생이 또한 슬픔인, 그 심정이 먼 나라에서 온 낯선 남성에게는 어떻게 전해졌을까.영국 방송 채널4가 일본군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지난달 말 방영했다. 생존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를 밀착 취재해 담았다. 영상이 공개된 뒤 옥스퍼드대학에서 상영회와 토론회도 열렸고 현지 유
"이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아니래."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또렷이 기억난다. 밥을 먹다 말고 마주 앉은 사람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니라니? 대체 왜?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행성은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명왕성 순이라고, 지구과학 수업시간에 달달 외워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게, 왜 아닌데? 뭐가 아닌 건데? 언제부터 아니게 된 건데?명왕성이 사라지진 않았다. 천문학이 발달해 새로운 천체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2006년 태양계 행성 조건을 새롭게 정리했고, 그에 따라 명왕성은 행성이 아닌 왜행성으로 분류
여름 올림픽이 끝났다. 대한민국에서는 비장애인 올림픽 29개 종목에 선수 232명과 임원 122명이, 장애인 올림픽 14개 종목에 선수 86명과 임원 73명이 참가했다. 7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513명이 제각각 주인공인 드라마 513편이 펼쳐졌다.'마침내 열린다'는 것만으로 감격스러웠던 대회다.2019년 말 발생해 무섭게 퍼져 나간 코로나19 바이러스 탓에 전 세계 모두가 일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고 그 혼란이 길어지고 있다. 대회는 1년 연기됐다. 개막일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온 때까지도 취소하거나 축소하자는 주장 혹은 결국 그렇